길어진 차체에도 끈끈함이 돋보이는 명품 코너링
국내 시장에서 혼다코리아 자동차가 차지하는 절대적 볼륨은 크지 않다. 하지만 CR-V, 파일럿과 함께 어코드까지 풀 체인지 모델로 출시된 올해라면 다르다. 특히 어코드는 혼다를 상징하는 모델이자, 차급, 브랜드를 넘어 신뢰받는 아이콘이다. 10월 중순, 혼다코리아는 ‘큰맘’ 먹고 100여개 매체를 대상으로 미디어 시승회를 진행했고, 휠로그는 여기에 참석했다. 실제 운전 시간은 짧았다. 그 짧은 시간에 가장 인상 깊게 온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크롬이 사라졌다
혼다 어코드 11세대 디자인
10세대까지의 어코드는,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개성이 확실했다. 렉서스 하위호환 느낌이 너무 확실한 캠리와는 달리 오리지낼러티가 강한 디자인이었다. 특히 여기에는 전면부에 들어간 크롬 트림의 지분이 컸다. ‘솔리드 윙 페이스(solid wing face)’라 불린 9세대의 디자인은 말 그대로 ‘샤인 라잌 크롬’이었다. 그러다가 10세대로 오면서는 크롬 트림이 칼날처럼 얇고 예리하게 디자인돼 해드램프 위쪽 라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1세대에서는 전면에서 크롬 트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범퍼 좌우 덕트 테두리에만 적용됐는데 그나마 저반사 타입. 11세대 어코드는 깨끗한 면의 흐름과 수평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별도 테두리 없이 심리스하게 헤드램프 유닛과 연결되는 라디에이터 그릴, 일체형 리어램프와 단정한 트렁크 리드 등은, 세단 디자인의 핵심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또 스스로 답한다.
혼다뿐만 아니라 토요타조차도 마찬가지이긴 했는데,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 북미에서 생산하는 일본 브랜드 차량들은 전에 없던 마감 품질 문제로 고생했다. 이미 이 당시부터 북미에서는 제조업 인력 부족이 심화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자동차 영역에서는 인력들의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혼다 역시 이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고, 약간의 단차가 10세대 어코드 특유의 날카롭고 유려한 선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11세대에 와서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해소됐다. 이건 비단 어코드뿐만 아니라 6세대 CR-V에서도 보이는 성과다. 전체적으로 북미 공장의 품질 검수 역량이 강화됐으며, 적어도 이번 11세대 어코드는 혼다다운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인다.
단순함을 살린 디자인과 깔끔한 마무리 통해 이전 대비 65㎜ 길어진 전장이 더욱 돋보인다. 휠베이스는 2,830㎜ 그대로이고 전후 오버행은 약간 길어져 10세대 대디 다소 중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7~9세대 어코드를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환영받을 만하다.
어코드를 위한 인테리어
수평성 강한 조작계 위치와 실내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2020년 11세대 시빅부터 시작해, 6세대 CR-V와 4세대 파일럿, 그리고 11세에 어코드에는 수평성이 강한 인테리어 아키텍처가 적용됐다. 특히 송풍구, 조작계 좌우로 이어지는 선적인 구조가 눈에 띈다. 가운데는 12.3인치로 커진 터치스크린을 설치했다. 물론 요즘 트렌드로 보면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어코드를 포함한 혼다의 디자인 철학은 부가적인 기능이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수평형 아키텍처는 어코드에 와서 임자를 만났다. 고광택 소재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송풍구의 메쉬 패턴은 전면 라이디에이터 그릴과 닮아 있다. 송풍 방향 조절 레버는 토글 디자인으로 아날로그적인 감각을 깔끔하게 풀어냈다. 아래 공조기기 레버도 다이얼 세 개로, 디지털화, 터치를 지향하는 요즘의 차종들보다 편리한 사용성을 제공한다. 결국 자동차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오조작 가능성을 극히 통제하고 주행 중 편의를 돕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혼다의 ‘휴먼 머신’ 철학이 돋보인다.
전면 송풍구 아래, 조수석 앞 크래쉬패드에는 밝은 컬러의 인조가죽 트림이 적용돼 있다. 이는 센터 콘솔에도 동일하다. 센터콘솔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스마트폰 무선 충전패드 공간도 넓어졌다. 고속 충전보다는 안정성 위주의 패드로, 만약 빠른 충전이 필요하다면 충전 단자를 사용하면 된다.
센터 콘솔 윤곽은 10세대 디자인에서 큰 변화가 없다. 각이 있는 컵홀더 윤곽도 비슷하다. 대신 변속 버튼이 사라지고 레버 타입으로 회귀했다. 북미 시장 고객들의 선호도고 그렇지만 국내 어코드 유저들 사이에서도 레버 타입이 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버튼에 들어가 있던 스포츠 모드는 레버 하단의 주행모드 변환 토글스위치로 바뀌었다.
시트 구조는 10세대와 거의 동일하되 스티치 정도가 바뀌었다. 어떤 체형의 운전자가 앉아도 편안한 타입이다. 특별히 버킷 시트가 아님에도 선회 시 몸의 쏠림이 없다.
다만 짧은 시승 중이라 2열 감각과 하이브리드에 제공되는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서는 체크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은 추후 별도의 리마인드 시승기를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라이드 앤 핸들링계의 ‘한석원 쌤’
혼다 어코드가 말하는 스포티 드라이빙
10세대 어코드 하이브리드에는 액티브 댐퍼 컨트롤 즉 노면 주파수에 대응해 댐퍼(쇼크 업소버) 감쇠력을 조절하는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일상 주행에서는 부드럽게, 고속 선회구간에서는 탄탄하게 버티는 승차감과 조향성을 전했다. 그러나 11세대에 적용된 모션 매니지먼트 컨트롤은 오히려 그러한 기능들을 뺐다.
“라이드 앤 핸들링에서 예전에는 꼭 필요하다고 넣었던 첨단 기술도, 결국 섀시가 감당할 수 있다면 필요 없는 부분이 된다. 혼다의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섀시는 세대마다 발전하고 있고 다양한 물리력에 더 세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특히 전륜 구동 차량에서, 조향에 대한 후륜의 응답성은 차대와 현가 장치를 잇는 부분의 부싱(고무 완충재) 성능, 조향 장치 부품의 마찰력 저감 등을 통해 기계적으로 해결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혼다의 기본 기술 방향이다.” 모션 매니지먼트 컨트롤에서 전자식 댐퍼 컨트롤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에 대한 혼다코리아 기술 담당 팀장의 전언이다.
이는 혼다라는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닿아 있다.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이 없던 시절, 오로지 시운전과 직접 가공을 통해 정밀한 엔지니어링을 만들어내려 했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엔지니어링 철학은 아직도 유효하다. 개념 다음에 테크닉이 있다는 태도는 마치 스타 수학 강사 한석원의 강의를 보는 듯하다.
실제 국도 구간 주행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속과 선회를 시험해보았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강한 제동 시 고개를 처박는 느낌이 없고, 회복시 불필요한 리바운드가 없다. 긴 차체임에도 선회 시 후미의 더듬거림이 없다. 특히 고속도로 진출입로처럼 고속 조향에 들어갈 때 부드럽지만 네바퀴가 분명히 지면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외륜이 딱딱하게 버틴다기보다 내륜이 마찰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해외에서도 11세대 어코드의 핸들링에 대해서는 끈끈하다(adhesive)라는 표현을 쓴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 신뢰도 있는 주행 감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회생제동 감도 조절을 통한 감속 시 반응이다. 10세대 어코드 하이브리드에서 4단계이던 감도 조절은 6단계로 세분화됐고, 최고 단계에서의 제동이 매우 강하게 걸린다. 브레이크 페달을 사용해도 회생 제동이 먼저 작동하긴 하지만 6단계에서는 거의 유압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수준으로 브레이크가 걸린다.
어코드 연비는 질리는 꽃노래
고속도로에서도 19km/L이상
꽃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린다는 것이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연비 이야기다. 공인 복합 연비는 17km/L지만 실질적으로 주행 시 ‘뻥연비’다. 추월을 지속적으로 시도한 고속도로 주행에서도 17~19km/L를 기록했다. 고속도로에서 노멀 모드로 정속 주행을 한 기자가 17.5km/L를 찍었는데 좀 더 격하게 운전한 동승 기자는 19km/L 이상을 기록했다. 회생 제동 효율이 높은데다, 증가한 모터 최대 토크가 작용한 덕분으로 보인다. 경사가 많은 강원도의 지형도 회생 제동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만 회생 제동 모드를 평상시에 너무 강하게 사용할 경우 모터 및 전력 계통에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전기차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테스트를 위해 회생 제동 모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실제 차주라면 6단계 중 3, 4단계를 쓰고 내리막이 이어지는 고속도로 구간에서 엔진 브레이크처럼 쓰는 정도가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CR-V 하이브리드와 함께, 다시 찾아온 고유가 시대가 반갑다. 2019년, 번지수를 잘못 찾은 불매 운동만 아니었다면 당시 혼다는 무난히 1만 대 클럽 재진입이 가능했을 것이다. 당장은 쉽지 않겠으나 압도적 연비와 공간성, 디자인을 갖춘 혼다의 하이브리드 라인업이라면 2024년에 1만 대는 아니더라도, 6,000~7,000대 정도에는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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