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코리아 공식 SNS 실루엣 공개, 10단 AT 및 업그레이드된 혼다 센싱 추가
혼다코리아가 SNS를 통해 4세대 파일럿의 실루엣을 공개했다. 북미에서 공식 시판을 시작한 시점이 2023년 1월 말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점. CR-V 터보 이후 이어질 줄 알았던 CR-V 하이브리드보다 먼저 나올 가능성도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기를 감안하면 근 몇 년 내 가장 공격적인 상품 전략이라 할 수 있다.
4세대 파일럿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외관 디자인과 편의 기능을 몇 개 넣어놓은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섀시 엔지니어링과 파워트레인 그리고 혼다 센싱까지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여러 트림 중 국내에 출시될 가능성이 높은-이미 PDI에 있겠지만-2개 트림에 대해 살펴봤다.
혼다 4세대 파일럿, 동력성능 향상과 10단 자동변속기 채용
파일럿은 3.5리터(3,471cc) V6 i-VTEC엔진을 유지한다. 엔진 동력 성능이 소폭 개선됐다. 최고 출력은 285hp(288ps, 6,100rpm)로 전개 범위가 100rpm 높아지고 4ps 상향됐다. 최대 토크 수치는 36.2kgm로 동일하지만 기존 대비 300rpm 높은 5,000rpm까지 상향 확대됐다.
토요타가 동급 차종에 2.5리터 다운사이징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혼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0리터 엔진에 기반하므로 파일럿처럼 대형 차종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신 10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해 효율을 개선했다. 오딧세이에 처음 적용된 전륜 기반 10단 자동변속기는 자전거 기어와 같은 원리여서 많은 단수에도 불구하고 컴팩트한 사이즈와 상대적으로 가벼운 중량을 자랑한다.
복합 연비는 4륜 구동 기준 21mpg(8.9km/L), 도심 19mpg(8km/L), 고속도로 25mpg(10.6km/L) 수준으로 전 세대 차량과 비슷한 수준. 그러나 차체가 훨씬 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선된 것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시승하면서 경험한 실연비는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는 파워트레인도 아니다. 동일한 조합인 오딧세이의 경우 킥 다운(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밟아 변속단을 내리는 것)시 2단씩 한꺼번헤 하향 변속해 우수한 가속감을 구현한다.
험로주행 성능 업그레이드
파일럿은 북미에서 오프로더 성향이 강한 차로 개발됐고 또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요즘 트렌드와 달리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것은 마찰력이 부족한 길에서 토크를 세밀하게 전개해 탈출 성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
후륜 차축에 적용되는 전자식 디퍼렌셜인 i-VTM4™️(지능형 지형관리 시스템 4륜 구동)도 2세대로 업그레이드됐다. 허용 토크는 엘리트 트림의 경우 최대 2,500Nm(255kg∙m), 본격 오프로더인 트레일스포츠 트림의 경우 3,000Nm(306kg∙m)에 달한다. 또한 i-VTM4는 반응 속도 역시 이전 세대 대비 30% 빨라졌다.
또한 2mph(3.2km/h)부터 최대 12mph(19.3km/h)까지 작동하는 힐 디센트 컨트롤이 파일럿 최초로 적용됐다. 내리막길에서 이 기능이 활성화되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속력을 유지한다.
순수한 섀시 엔지니어링으로 만든 라이드 앤 핸들링
파일럿은 2,890㎜로 이전 대비 휠베이스가 71㎜ 길어졌고 전륜 트랙은 22.8~30.5㎜, 후륜 트랙은27.9~38.1㎜ 넓어졌다.
혼다는 라이드 앤 핸들링에서 댐퍼에 특별한 기능을 추가한다든지 하는 것은 지양하고 순수한 섀시 구조의 역학 계산을 우선시하는 것이 고집이다. 이는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설계로 집약된다. 서스펜션의 형식은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지만 세부적인 부품의 강성 설계를 달리한다. 전륜은 맥퍼슨 스트럿, 후륜은 멀티 링크 시스템. 전륜 시스템의 상하 유연성은 8% 증가했고 좌우 기울어짐에 대응하는 롤 강성은 12% 증가했다.
길어진 휠베이스에 맞게 후륜 서스펜션의 진행방향에 대한 유연성도 29% 증가했다. 전륜구동 기반 레이아웃의 특성상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이 부분이 취약해져 언더스티어 성향이 되기 쉬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3세대 파일럿도 승차감이나 핸들링에서 부족한 점을 노출하진 않았으나, 휠베이스가 증가한 데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후륜 서스펜션의 좌우 기울어짐 강성은 24% 증가했다.
저속 추종 기능, 트래픽잼 어시스트 더한 혼다 센싱
3세대 파일럿을 타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이 저속에서도 정지와 재출발이 가능한 저속 추종 시스템(low speed follow) 기능이다. 자동감응식 정속주행 장치(ACC)가 활성화되면 20km/h 이하에서도 작동한다. 오딧세이에도 적용됐는데 3세대 후기형의 오딧세이에는 이것이 장착되지 않았다. 9단 자동변속기의 로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혼다 센싱은 이 기능을 더욱 발전시켜, 차로 유지 보조(LKAS) 기능과 조화시켜 정체 구간에서의 편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트래픽 잼 어시스트(Traffic Jam Assist)로 진화했다.
파일럿에는 처음 적용되는 기능. 도로 표지판 인식 기능도 파일럿 최초다. 그러나 해당 기능의 경우 북미와 국내의 표지판 반사율 등의 규정이 달라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출시 이후에 알 수 있을 사양이다.
커진 차체와 디자인은 호평, 인테리어는 실물이 중요해
실내 공간의 확장과 실용성의 개선도 돋보인다. 특히 시트는 사이드 볼스터가 좀 더 두텁고 견고해져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투어링과 엘리트 트림의 경우 2열 가운데 시트를 탈거할 수 있는 플렉서블 8인승이 적용된다. 2열 레그룸은 2.4인치(60㎜), 3열 레그룸은 2.1인치(53.3㎜) 확장됐다.
특히 풀플랫(2, 3열 시트 완전 평탄화) 시 2열 시트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후륜에 멀티 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으면서도 이러한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다.
다만 1열 인테리어의 수평적인 아키텍처는 브랜드 플래그십에 맞는 격을 갖고 있을지 실물로 보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 CR-V의 인테리어도 사진으로 봤을 때는 심플함 속에 나름대로 이전과는 다른 모던함과 개선된 고급스러움이 담긴 줄 알았다. 그러나 외관 디자인의 완성도, 다른 기능에서의 우수성에 비해 소재에서는 다소 저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 파일럿 3세대의 실내 인터페이스는 올드하다는 지적은 있었을지언정 소재들의 깔끔함과 시트의 안락감 등이 견고하게 결합돼 포기하지 않은 품격이 있었다. 부디 실물로 보는 인테리어에도 그런 감각이 있길 바란다.
엘리트와 투어링으로 먼저 출시할 듯, 트레일 스포츠 도입 가능성은?
파일럿의 북미 판매 트림은 구동 방식과 좌석수에 따라 다르며 총 10개 트림에 달한다. 한국 도입 가능성이 높은 트림은 상위 모델인 투어링과 엘리트의 4륜 구동 모델이다. 현지 가격은 각각 4만 8,550달러(한화 약 6,180만 원), 5만 2,030달러(6,625만 원)다. 전 세대 파일럿이 큰 크기에도 6,000만 원에 조금 미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가격 상승분에 충분히 부응하는 파일럿의 상품성을 꾸준히 전파하고 이에 만족한 고객들의 스토리텔링, 신규 고객을 유입하기 위한 다양한 유무형의 유인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오프로더로서의 외관과 기능적 측면을 모두 강조한 스페셜 트림인 트레일스포트의 도입을 통해 혼다 브랜드 자체의 가치 상승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잘 팔리지 않는 트림일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국산차와 비교되는 건 자존심 상하지 않은가? 3개월 뒤면 일어오르는 가죽시트, 잡소리가 나는 인테리어 트림 등을 채워놓고 첨단 고급사양으로 무장했으니 올드한 일본 차를 사지 말라는 식인 국산차의 간접 저격 마케팅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혼다만이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브랜딩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면 파일럿은 차 자체의 흥행만이 아니라 혼다코리아 전체의 반전을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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