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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명륜 기자

현대차-사우디 모빌리티 산업 협력, 현실성은?

최종 수정일: 2023년 10월 24일

정부 끌고 현대차그룹 밀고 일단 순행…빈 살만 정치생명 및 중동 정세에 영향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이다. 국내 최고 기업 총수들도 이를 수행 중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진행하려는 다양한 개발 계획과 그에 부응한 계약 및 양해각서 체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조립공장 증설 계약 및 수소모빌리티 생태계 조성을 위한 다자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Hyndai Motor Chairman Chung Eui-sun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을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부는 ‘제2의 중동붐’을 이야기한다. 한국을 향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총리인 무함바드 빈 살만의 애정 표현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혼탁해지는 국제 정세와 경제적 혼란 속에 이러한 소식들이 현재를 개선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낭보가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계약을 맺은 기업의 책임자와 실무자들도 그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현대차가 관련된 내용들만을 중심으로 미래를 이번 사우디아라비에서 들려온 소식들을 분석해보았다.



현대차,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자동차조립 합작공장 건설계약


현대차와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협업을 통해 2026 상반기 양산이 가능한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양측 도합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며 지분은 현대차와 PIF가 3:7로 나눠 갖는다.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진행된 계약식에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장재훈 사장이 직접 참석했으며 PIF 측에서도 수장인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안 총재와 야지드 알 후미에드 부총재가 마주했다. 그만큼 중량감 있는 계약 사항이다.


Saudi Arabia Jeddah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지역(기사 내용과 무관)

2024년부터 건설에 들어갈 이 공장은 연간 5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해당 공장은 엄밀히 따지면 제품반조립(Complete Knock Down) 방식이다. 오랫동안 오일머니에 의존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천한 제조업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최적이다.


2021년, 스탯티스타(www.statista.com) 조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큰 자동차 판매량을 기록했다. 연간 판매량 약 47만 대 수준. 산유국이긴 하지만 빈부격차가 큰 편이라 자동차 판매량 자체는 많지 않다. 그나마 2018년, 빈 살만 왕세자가 개혁적인 차기군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운전 면허 발급을 허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체적인 자동차 수요가 증가한 편이다.


2022년 전동화에 기반한 우수한 실적으로 스텔란티스마저 제치고 세계3위의 실적을 기록한 현대차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여전히 중국에서의 실적은 부진하고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방지법의 영향으로 전기차 판매가 시들하다. 어찌 됐든 중동과 아프리카 등 성장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이번 공장 설립 계약 자체는 고무적인 결과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는 소형 세단, 해치백이 포함된 액센트다. 중동국가 하면 ‘경찰차도 람보르기니’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건 일부 경제자유구역의 경우고, 대부분은 저가의 양산차가 팔린다. 이 시장 최고 강자는 토요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기준 33%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그러했듯 현대는 이 파이를 잘라먹어야 한다. 또한 중동 시장은 아프리카 신흥 마켓 공략을 위한 교두보다.


Hyundai Accent
현대 액센트(북미 사양)

여기서 관건은 조립 중심의 공장이 지역에서의 브랜드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다. 사실 현대차가 처음 문을 연 1966은 자동차 산업 자체가 그리 완숙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성장성은 갈수록 둔화된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인구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 세계 전문가들이 ‘홍보영상에서만 볼 수 있는 도시’라며 현실성을 부정하는 거대 토목사업 ‘네옴 시티(Neom City)’에 투입할 인력도 부족하다. 제조업을 통한 입국(立國)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러한 산업에서의 한계점을 해외 기업들의 참여로 해결한다는 계획이고 여기에는 AI 등을 포함한 방대한 기술솔루션 등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가능하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스마트 팩토리의 테스트 단계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국∙사우디∙현대차

수소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


현대차는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소모빌리티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다자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참가 기업은 미국의 에어 프로덕츠 쿼드라(Air Products Quadra),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중교통 기업 SAPTCO 그리고 현대차와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이 함께 한다. 쉽게 말해 수소모빌리티 기반 버스 기술을 보유한 현대차가 SAPTCO에 차를 파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연구원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의 중소기업을 발굴해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에어 프로덕츠 쿼드라는 수소의 공급, 저장 등을 포함한 사업 체계를 구축한다.


Hyundai Motor in Saudi
바르드 알바드르사우디 투자부 차관(왼쪽) 장재훈 현대차 사장

사실 이 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 조건 상 비교적 성공 가능성이 높다. 비록 제조업 분야는 약하지만 워낙 오일머니를 중심으로 했던 국가인만큼 석유, 가스 관련 정제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그 수소는 석유나 천연가스에서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향하는 원유 중심 경제구조 탈피를 중심으로 한 ‘사우디 비전 2030’에 기여하는 여러 조치 중 가장 현실적인 것이 수소 생태계 구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6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한국 정부 대표단에 양국 수소 분야 협력을 직접 요청하기도 했을 만큼 양국 간 교류의 이해도 높다. 참고로 압둘아지즈 장관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이다. 그만큼 이 양해각서에 사우디아라비아 최고위층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소모빌리티는 세계적으로도 승용보다는 상용차의 에너지원으로 조금씩 전환되고 있다. 수소를 만들기 위한 제반 조건이 충분한 사우디아라비아여서 한국 기업이 ‘춤’만 잘 추면 되는 구조다.


Hyundai Hydrogen Mobility
현대차 수소상용차

다만 수소 역시 석유만큼이나 저장, 수송 등의 과정에서 안전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불안한 이 지역의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결국 관리 역량이 중요하다. 2019년과 2022년 국영정유기업 아람코의 정유시설, LNG 저장 시설 등이 예맨 반군의 공격을 받아 시설 운영에 차질이 생겼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수소 공급과 자동차 공급 등이 원활하게 맞물려 새로운 모빌리티 전환으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성과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해도 인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만 보면 중국이라는 경쟁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투자를 했는데, 아프리카, 중동 국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중국의 전기 모빌리티가 인해전술 식으로 치고 들어온다면 지금 계획하고 있는 청사진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차 측에서도 이런 복잡한 위험과 변수를 고려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지만,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현대차는 일단 ‘중동신화’라는 키워드를 꺼내들며 정주영 선대 회장의 업적까지 소환했다. 그러나 투자자의 입장이라면 과도한 기대는 넣어두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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