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사자 타고 낙산사 일출, 오대산 와인딩
푸조는 2024년 풀 체인지 및 페이스리프트 차종의 국내 출시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력 라인업은 전동화 차종에 집중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브랜드 인지도가 약화돼 고전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자 파격적 할인과 함께 미디어, 고객을 상대로 다양한 차량의 시승 이벤트를 진해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투자이며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현재 운용 중인 차들은 이전에 시승회가 진행됐거나 새로운 엠블럼 적용 이전의 차들이다. 한마디로 리프레쉬 시승의 개념. 차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으나, 대신 이 차와 함께 발견할 즐거움은 얼마든지 새로울 수 있다. 휠로그는 향후 일련의 테마로, 국내 명찰 순례를 잡아봤다. 그 첫 주자가 e-2008이다.
서피 비치 말고 낙산사
e-208로 왔던 길 e-2008로 돌아오다
요즘 양양은 사시사처 핫하다. 갈 곳 없이 뜨거운 욕망이 몰려 하룻밤 연분이 꽃처럼 불탄다. 하지만 양양에는 세속 욕망을 잠시 파도 속에 잠재우는 곳도 있다. 바로 국내 최대의 관세음보살 성지 낙산사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산의 이름인 포탈라카(Potalaka)를 한자로 음차해 줄인 것이다.
낙산사의 주중과 주말 풍경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주말엔 주차장과 경내 할 것 없이 발디딜 틈이 없으나 주중에는 낙산사의 너른 품을 온전히 혼자 즐길 수 있다. 특히 주차장에서 보는 일출은 언제 봐도 명품이다. 이번에 받은 e-2008 차량은 퓨전 오렌지 컬러다. 일출에 잘 어울린다.
이 길은 이전에 해치백인 e-208로 달려본 적이 있다. 1월 중순, 진눈깨비까지 내리던 날,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미끄러워 제 속력을 내지 못한 게 오히려 주거리에는 다행이었다. e-2008의 배터리 용량은 e-208과 동일한 용량인 50kWh로 국내 첫 출시 당시, 국내 인증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237km였는데 2022년 업데이트를 통해 260km로 길어졌다. 물론 요즘 전기차 트렌드 치고는 부족하지만, 배터리 용량이 적은 만큼 충전이 빠르다. 2년 전보다 충전 여건도 더 좋아졌다. 2년 전 e-208을 충전했던 인제 내린천 휴게소에는 그 때는 없던 민간사업자의 초고속 충전 시스템이 들어섰다.
테마가 테마인만큼 여유를 갖고 천천히 운전했다. 규정 속력에 맞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다 보니 전기 사용량은 확실히 적었다. 에코든 노멀의 주행 가능 거리 차이는 약 15~20km 정도.
낙산사 주차장은 엄밀히 말하면 의상대 쪽에 가깝다.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자리다. 바다 쪽으로 둘러진 낮은 담이 멋스럽다.
경내로 들어서면 고양이가 사람을 피하지 않고 반겨주기까지 한다. ‘인싸’인 듯하다. 실제로 고양이는 불가에서 사랑받는 존재다. 중국 당(唐)대, 남인도 등지에서 불경을 중국으로 들여올 때, 배 안에서 경전을 갉아먹는 쥐를 쫓았기 때문이다.
낙산사는 671년에 창건됐지만 수많은 화재와 전란으로 타고 복원되길 반복해 원 모습은 아니다. 조선 성종 때도 화재로 전각이 탔고 한국전쟁 당시에 거의 전소됐다. 그 이후 급히 복원돼 다소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가 2005년 산불 이후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 등 조선 시대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됐다.
낙산사는 곳곳에 나 있는 길이 아름다운 절이다. 홍련암으로 이어지는 바다절벽길, 가장 유명한 전각인 원통보전 옆으로 나 있는 작은 문인 원통문과 그 이후로 이어지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도 명소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거대한 해수관음상 자리도 명소다. 이 상은 1970년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조성에 힘을 보탰다. 당시 그가 낙산사 신도회장이었는데, 그가 몰래 고 육영수 여사의 유품을 안치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이것이 불보살상에 들어가는 복장물인지는 불분명하나, 고금과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예술에는 당시 권력자들의 이런저런 뒷얘기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 뒷모습만 출연하신 스님은, '07~'08 논산 군번으로 불교 행사에서 '시방세계' 한 번 외쳐봤다면 뵈었을 그 법사님.
사자 타고 와인딩 극락 너머
문수보살 성지 오대산으로
관음 성지 낙산사를 오전에 봤다면 오후에는 평창 오대산 월정사를 찾는 것도 하루 순례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오대산은 문수보살 성지다. 그 문수보살이 기거한다는 중국의 우타이산의 개념을 자장율사가 신라 땅에 적용한 것이다.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은 주존으로 모시는 부처님이 각각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로 다르지만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묘법연화경’ 세계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급 보살들이다. 두 사찰을 잇는 길은 해안 도로에서 산악 도로로 이어진다.
자장율사는 의상대사보다 35년 앞서 태어난 인물로, ‘율사’라 불리듯 계율을 중심으로 불교를 체계화하고 신라의 국가 이념으로 구축하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요즘 식으로 말하면 ‘T 성향’이 너무 강했던 듯하다. 어느 날 한 거지 노파가 자장율사를 찾았는데 행색이 남루할 뿐만 아니라 망태기에는 죽은 강아지가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자장율사가 이를 추하게 여겨 문전박대하자 노파가 크게 꾸짖고 눈 앞의 문수보살도 못 알아보니 딱하다며 죽은 강아지를 허공에 던졌다. 그런데 이 죽은 강아지가 사자로 변신했고 문수보살은 이를 타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이에 크게 자책하며 그자리에 쓰러져 입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사자는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동물이고 불교에서도 사랑받는 동물이다.
문수보살의 사자는 아니지만, 푸조도 사자다. e-2008의 엠블럼은 구형이고, 308 해치백과 408에 적용된 모델이 2021년 리브랜딩 이후의 것. 하지만 앞발을 쳐든 모습이 ‘츄르’ 달라는 고양이 같다. 낙산사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은 대략 90km 정도. 중간 한 차례 충전은 사천 해변 인근의 한 택시 회사 충전소에서 해 뒀다. 이번 일정 중의 두 번째 충전으로 역시 20분 정도로 20kWh 정도를 충전했다.
오대산 와인딩은 경기도 언저리의 고만고만한 산길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강릉에서 평창 방향으로 갈 때는 경사도 급하다. 에코 모드로는 재가속이 느려 산 아래쪽에서는 노멀을, 경사가 가팔랐던 곳에서는 스포츠를 사용했다. 최대 토크가 26.5kg∙m인데 해치백인 e-208보다는 차 무게가 약간 무거워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연기관 플랫폼과도 호환되는 CMP 플랫폼은 푸조 특유의 유연하고 끈끈한 마찰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길의 정상은 진고개 정상 휴게소다. 여기서부터 월정사 인근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이 때는 B 모드가 유용하다. 다만 내려가는 길은 정비가 잘 돼 있어 경사 자체는 완만한 편이어서 가속 페달을 거의 놓으면 속력이 30km/h 정도로 유지된다. 다만 회생제동 회로도 열을 많이 받는다. 물론 주행 가능 거리가 연장된다는 장점도 내리막길에서는 적극 회생 제동 모드인 B 모드를 사용했다. 2023년 상반기에 공개된 e-2008 페이스리프트의 경우에는 회생제동 단계가 더 세분화되고 그 역량도 강화된다. 다만 지속적으로 회생제동을 사용하면 이 회로 역시 발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전기차의 경우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해도 회생제동이 먼저 작동하지만 B 모드의 경우 저항이 크므로 일반 모드와 적절히 나눠 사용할 필요가 있다.
월정사 주차장은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고 잘 관리되고 있다. 조계종 교구 본사여서 신도 수도 상당하고 매년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는 학교도 많기 때문이다. 주차장 바로 옆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11월 11일에 개관했다. 오대산은 원래 조선왕조실록 사고가 있던 곳으로, 해당 박물관은 2000년대 초 환수된 조선왕조실록의 오대산사고본이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불교 신앙의 지적 측면을 상징하는 문수보살 성지에 실록을 보관한 박물관이라는 조합이 꽤나 어울린다.
서울에서 양양 낙산사, 오대산 월정사를 거치는 투어는 하루 일정으로는 어렵다. 편도만 269km 거리다. 물론 쉼없이 차로 달리는 것만으로야 4시간 안으로 가능하겠지만, 사실 푸조 e-2008은 그렇게 장시간 앉아 있거나 운전하기에 몸이 안락한 차는 아니다. 직관적인 조향 감각에 치중한 면이 큰 차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찰 탐방은 어느 정도 걷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안전을 위해서 1박 2일 정도의 코스로 진해하는 것을 추천한다.
[본 매체는 종교지가 아니므로 특정 종교에 관련한 포교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시승과 여행의 또 다른 가치를 전하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다음에는 한국의 기독교 성지 탐방도 준비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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