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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명륜 기자

자존심 접고 ‘이탈리아’ 위해 뭉치다

2023 모데나 모터밸리 페스트 나선 이탈리아 럭셔리카 브랜드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주 현지 시간으로 5월 1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모데나에서 ‘모터밸리 페스트 2023(Motor Valley Fest 2023)’이 개막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두카티, 에네르지카, 달라라, 파가니 등 이탈리아의 자동차 산업을 상징하는 브랜드들이 모이는 모터쇼다. 특별히 신차가 나오는 자동차 행사는 아니지만, 내연기관 퇴출론에 저항하고 있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 전체로 보면 여느 해보다 상징성이 크다.




실질적인 저지 실패, 2035년 EU 내연기관 퇴출


2035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은 2022년 말까지만 해도 좌초될 것이 확실해보였다. 전동화 전환에 늦었던 독일 그리고 고성능, 고부가가치의 내연기관차가 버티고 있는 이탈리아의 반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는 EU에서 GDP 11%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내연기관 퇴출 의무화와 전기차 전환 기조에 대해 ‘경제적 자살이자 중국에 대한 퍼주기’라며 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 달리 EU의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의 수정은 미미했다. 지난 3월 28일, EU의 교통∙통신 에너지 이사회의 표결 결과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탑재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최종 채택했다. 그나마 유예기간을 열어 준 것이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발전 전기로 탄화수소를 합성하는 e-퓨얼의 사용 인정 정도다.


사실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의 경우, 출발이 늦었다는 한계는 있지마 프리미엄 이상(동급 대중 제품 대비 1.5~3배 가격)의 전동화를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메르세데스 EQ, BMW i, 아우디 e-트론, 포르쉐 타이칸 라인업 등은 전동화 예후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게 하는 차들.



코어 고객의 저항, 전동화 전환을 위한 규모 부족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물론 구 피아트그룹 소속의 브랜드들인 피아트, 피아트의 고성능 브랜드 아바스 등이 구 PSA 그룹과 합병하면서 소형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는 숨통이 열렸지만,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두카티 등의 경우는 내연기관 의존도가 높다. 우선 고객들의 요구 때문이다. 이들 블랜드의 고객들은 소수의 부유층들로 내연기관 고성능 고급차에 대한 고집이 강하다. 페라리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것만 해도 대단한 양보를 받아낸 일이었다.





사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전동화를 위한 기술이 부족한 회사는 아니다. 이들은 각각 포뮬러 원과 르망 내구레이스 등 카테고리 별 최고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 중이고 여기서는 이미 전동화를 접목한 차량을 성공적으로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코어 고객들은 단순히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 고객들이 생각하는 가치 안에는 내연기관의 순수성도 들어 있었다.


이런 고객 특성은 전동화 전환에 필수적인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는 데도 한계로 작용한다. 사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생산 대수보다는 부가가치를 통해 이윤을 내는 회사들이다. 그나마 페라리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2021년부터는 이전까지 연간 7,000대로 제한했던 생산을 1만 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이런 수준으로는 차의 기본 개념이 다른 전기차로의 생산 전환을 이루기에 잃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게다가 생산 대수를 확대하는 것 자체가 EU의 내연기관차 퇴출 규정을 우회할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EU는 연간 1만 대 이하의 차량을 생산하는 제조사에 대해서 2036년까지 이 규정의 적용을 유예하는 정도다.



앙숙 브랜드도 ‘이탈리아’의 이름 아래 결집


모터밸리는 이탈리아 럭셔리 자동차 산업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 주의 모데나, 볼로냐, 파르마 지역 등을 연결하는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그 중심은 역시 모데나의 사관학교 앞 광장이다. 이 행사 자체는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일대의 자동차 박물관을 순례하고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프로그램은 이미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콘텐츠다.






행사에 참여하는 브랜드들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영역에서 이탈리아만의 럭셔리 가치, 즉 이야기가 있는 명품을 만드는 브랜드들이다. 게다가 올해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모두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징적 차종을 대중 앞에 내놓는다.


우선 페라리는 로마의 스파이더 버전을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한다. 1960년대 페라리 GT의 헤리티지를 가장 첨단화한 로마는 스파이더를 통해 오픈에어링의 쾌감까지 전한다. 54년 만에 등장한 프런트 엔진 스파이더인 이 차는 V8 엔진의 강력한 퍼포먼스에 오픈 에어링이라는 구조가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의 엘 바디 궁전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이미지로도 화제를 모은 이 차는 오는 6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 공개될 예정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람보르기니는 브랜드 최초로 V12 엔진에 초고성능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슈퍼카 레부엘토(Revuelto)를 내놓았다. 레부엘토는 ‘혼돈’이라는 의미로, 1,015ps의 폭발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이 정도 성능을 발휘하는 전기차들이 배터리 문제로 엄청난 무게를 갖고 운동성에서도 손해를 보는 데 비해 람보르기니의 이 파워트레인은 내연기관과 모터가 갖는 가능성을 최대 지점에서 결합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자동차다.




파가니는 브랜드의 세 번째 모델이자 새로운 장을 여는 미드십 하이퍼카 유토피아(Utopia)를 출품한다. 2022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이 차는 메르세데스 팬들도 그리워하는 5,980cc, V12의 메르세데스 AMG 엔진과 7단 수동변속기 및 자동변속기를 갖춘 이 차는 최고 출력 864ps를 발휘한다. 이 정도 차량을 수동변속기로 제어한다는 것은 운전자도 범상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 자체뿐만 아니라 고객 역시 차별화된 존재여야 한다는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전통과 자존심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이외에 마세라티, 달라라, 두카티 그리고 2009년 설립된 전기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에네르지카(Energica) 등도 핵심 모델들을 선보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 브랜드들의 CEO 등 고위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토크쇼 형태의 컨퍼른스도 계획돼 있다. 주제는 미래, 지속가능성, 전동화 등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분위기와 다소 멀었던 이탈리아의 브랜드들이 어떻게 변화와 위기에 대처할 것인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 앞에서 앙숙이었던 브랜드들이 어떻게 머리를 맞댈 것인지 가늠해보는 것도 흥미 포인트다.





이탈리아는 지난 3년간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당한 생산 인력들이 건강을 잃거나 사망했다. 글로벌 시장의 럭셔리카 수요 폭증으로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탈리아 정부가 EU의 내연기관 퇴출 기조를 저지하는 데 사실상 실패함으로써 더욱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모든 자동차 마니아들의 이상과 꿈이었던 이탈리아의 럭셔리카, 하이퍼카 드림은 여전히 자동차 산업의 살아 있는 상징으로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 과거의 영광을 포기한 채 새로운 경쟁에 나서야 할지 기로에 서 있다. 모터밸리 페스트를 단순한 관광 상품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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