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지만 유약한 이미지, 경∙소형차 중심
동물의 이름을 딴 자동차는 적지 않지만 의외로 토끼는 그다지 사랑받는 이름이 아닌 듯하다. ‘래빗’과 ‘버니’를 합쳐도 별로 걸리는 것이 없다. 특히 내연기관 시대엔 엔진의 강한 동력 성능을 발휘해야 했으므로 그리 좋은 토템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토끼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세상에 알렸던 차를 찾아봤다.
폭스바겐 골프가 '래빗'이었다고? 1세대 북미형
1978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뉴 스탠튼에 폭스바겐의 공장이 들어섰다. 폭스바겐의 첫 미국 공장이었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은 주요 공산품의 자국 생산 결과물에 대한 우대가 강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세계 최고 시장인 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그 편이 더 이익이 됐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가 바로 북미형의 골프인 ‘래빗(Rabbit)’이었다.
래빗은 별명이나 애칭이 아니라 차의 진짜 상품명이었다. 지금이야 골프는 골프라는 이름만으로 통하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 골프는 스포츠의 한 종목이었다. 게다가 철자까지 같았다. 심플한 직선과 귀여운 헤드램프, 자그마한 체구의 해치백에 고급 스포츠인 골프라는 차명을 붙이는 것이 당시 북미 소비자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폭스바겐 측은 판단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겠지만 폭스바겐 차명으로서의 ‘골프’는 만류(Gulf Stream)를 독일식으로 부른 데서 온 것이다. 참고로 바람의 이름이 아니라고 골프 측은 명확히 밝히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는 당시 북미 시장에서 나름대로 현지화 전략을 썼기 때문에 다른 명칭이 더 있었다. 멕시코에 출시되는 차량은 카리브(Caribe)로 사양이 약간 다른 남아프리카용의 경우에는 시티골프(Citi Golf)로 출시되기도 했다.
참고로 북미에서 래빗이라는 이름은 5세대에 들어 다시 한 번 부활했다. 5세대 골프는 여러 모로 골프의 숨겨진 잠재력을 강하게 드러낸 차였다. 유럽 시장용으로는 최고 출력 250ps의 3.2리터 6기통 엔진(VR6)이 올라간 R32, 북미 시장에서는 최고 출력 170ps의 2.5리터 직렬 5기통 엔진 등, 2000년대 중반의 실험적인 분위기를 잘 반영한 파워트레인 라인업이 적용됐다. 현재의 파워트레인 라인업이 심플하고 단순해진 것은, 이 때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파워트레인만을 살린 결과다.
스즈키 알토 라팡, 느림을 사랑하는 토끼
프랑스의 일본 사랑, 일본의 프랑스 사랑은 유난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드라마가 됐든 제품명이 됐든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보이려는 것에 반드시 프랑스어를 차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즈키의 경형 차종인 알토 라팡(Alto Lapin)에서 라팡 자체가 토끼를 일컫는 프랑스어다.
알토 라팡은 1979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스즈키 경차 알토의 파생 모델로 2002년부터 등장했다. 현재는알토를 떼고 그냥 라팡으로 불릴 정도로 독자적인 존재감을 구축한 편. 오히려 알토 시리즈의 하나가 아니냐고 물으면 의아해한다. 현행 모델은 2015년 등장한 3세대 모델로 마쯔다의 스피아노라는 차종과 함께 개발됐는데 확실히 유명한 것은 알토 라팡이다. ‘Lapin’의 ‘i’ 윗점을 토끼 형상으로 만들었다.
사실 라팡은 저렴한 가격에도 성능과 가격 면에서 뛰어난 스포츠카를 만들어내던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알토 라팡의 콘셉트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였다. 도시락통을 연상케 하는 박스형태는 더 이상 일상에서 역동성보다 하루하루 일상에서의 안온함을 추구하는, 저성장 국면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를 겨냥한 것이었다. 물론 아시아 최대의 튜닝 축제 도쿄오토살롱에 가면 갖가지 디자인의 라팡이 관람객을 반기지만, 라팡, 혼다 N 박스 등만을 원하는 고객들이 일본 자동차 시장에 역동성을 부여하긴 어려웠다. 실용적인데다 특히 여성 운전자들을 배려하는 멋진 차지만,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일본의 현재를 대변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현재 라팡은 3,395㎜, 휠베이스 2,460㎜의 체격에 일본 경차 기준에 부합하는 658cc의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최고 출력은 52ps(6,500rpm), 최대 토크는 6.1kg∙m(4,000rpm) 수준이다. 일본 경형 차종에서는 드물지 않지만, 이런 정도의 동력 성능에 4륜 구동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일본 기준이지만 2WD, CVT로 연비가 26km/L대에 달한다는 것도 매력이다.
참고로 휠로그는 오는 2023년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도쿄오토살롱2023 취재를 진행한다. 첫 날부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장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전할 계획으로, 자연스럽게 알토 라팡의 모습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토끼의 신체 구조와 기능은 상당히 메커니컬하다. 모세혈관이 분포한 토끼의 긴 귀는 훌륭한 냉각 기관이고 긴 뒷다리는 험로 지형에 특화된 강한 토크를 발휘한다. 포식자를 피해 방향을 바꾸는 선회 능력도 발군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악천후에 적응하는 능력도 우수하다. 또한 위험을 감지하는 영리함은 자율주행 시대 구현을 목표로 하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본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예쁘다. 참고로 그룹 뉴진스의 팬덤명도 토끼(TOKKI, BUNNI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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