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수요 완결과 가격 차이로 인한 어려움, ‘J커브’ 반등 시기는?
내연기관의 부활, 전기차는 언제 성장 둔화를 멈추고 재도약할 것인가
F1 기술이 적용된 680ps 엔진이라는 포지셔닝도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메르세데스 AMG가 63 넘버링 차량에 결국 V8 4.0리터 엔진을 적용한다. 페라리는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의 12실린드리를 공개했다. 1,000ps 이상의 PHEV도 진성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포르쉐와 부가티의 총애를 받던 리막조차 ‘고객들이 전기차를 원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기차 전환의 제동은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의 경우 이런 정체가 더 크고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장세 둔화라는 형태로 감지되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해석도 있고 기존 내연기관 공룡들의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산업 변화의 가장 흥미로운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
전기차 침체를 예언하다?
중국 전기차의 ‘굴기’를 제대로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는 2024 오토차이나(베이징 모터쇼)에, 테슬라는 불참했다. 2023년 중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37%대의 성장을 이룬 테슬라지만 이제 전기차의 공급만으로 중국 브랜드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행보다.
대신 일론 머스크는 어느 브랜드보다 빠르게 AI 기술을 적용한 완전 자율주행 차량 시대를 앞당겨 업계의 기술 리더로서 격차를 벌리겠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한데 이와 관련해서 그가 남긴 ‘예언’은 전기차의 필연적 극적 침체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는 이러한 전환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전력 수요를 언급했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아직 완전치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결국 모빌리티 패권은 에너지 패권이다. 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세계 갈등의 본질이었다. 세계 정세가 평화롭기만 하더라도 전력이 부족한데, 세계는 이미 전쟁에 휘말려 있다. 에너지를 위한 자원 거래 기준인 통화도 지나치게 많은 변수를 노출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최고위층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다.
기존 전기차주들은 만족하지만
사회적 수용 역량이 딱 거기까지
그럼에도 전기차 차주들은 자신 있게 전기차를 추천하며, 공히 높은 만족도를 언급한다. 물론 얼리 어답터로서의 자부심,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우월감 등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소비재의 속성상 당연하다. 법에 저촉되긴 하지만 아무리 장거리를 여행해도 손발 사용 빈도가 현저히 낮은 NOA(Navigate on Auto-pilot), 압도적 가속력 등은 자부심의 근거다.
그럼에도 더 이상 전기차 차주들의 ‘복음’은 통하지 않는다.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하기 위한 플랫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불편한 승차감, 특히 후발주자인 전기차 기업들의 운동성 엔지니어링 능력의 아쉬움은 혁신적 자율주행이 주는 편의성을 상쇄한다. 그리고 이건 내연기관이나 풀 하이브리드 차량에서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또한 빠른 속력으로 번 시간은 충전 시간으로 까먹는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또한 충전 시설이 아직은 부족하고 전력 요금 체계도 들쭉날쭉하다. 유럽에서는 2023년의 전기차 충전 요금이 전년도 대비 25% 이상 상승했다. 충전 시스템의 한계가 전기차 수요 완결에 미친 영향은 한국의 경우 더욱 극명하다. 이러다 보니 전기차의 초기 수요는 이미 ‘완결’이 난 상황이다. 전기차를 산 사람의 만족이 더 이상 다른 자동차 소비자들을 자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기차는 동급 차종 대비 아직 비싸다. 중국의 경우처럼 국가가 가격 통제까지 구현할 수 있다면 별개의 문제겠으나, 이는 산업 구조의 내적 모순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부동산 개발 기업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전기차 브랜들은 향후 중국 경제에 알지 못할 폭탄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전기차도 잘 만드는 내연기관 공룡들
자연스런 선택과 또 다른 의도
기존 내연기관 공룡들도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 꽤 빠른 시간에 썩 괜찮은 전기차들을 만들어냈다. 성능은 물론 오랜 기술 집약의 장점을 내세워 승차감이 좋은 전기차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이들이 꾸준히 전동화 라인업을 강화할 것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상당수 내연기관 기반 제조사들이 엔진의 부활을 외치는 것은 흥미롭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고객들이 싫어한다’는 아주 좋은 명분을 얻었다. 그건 실제로 그러하다. 서두에 언급한 메르세데스 AMG의 AMG C63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통해 2.0리터로도 4.0리터 트윈터보급 이상의 퍼포먼스를 낸다지만 주행 질감에서의 고급스러움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전동화를 통한 퍼스트무버가 되겠다고 외쳤던 현대차는 없애다시피 했던 엔진 연구팀을 부랴부랴 다시 꾸렸다.
사실 전동화 라인업을 갖추게 되면서, 내연기관 엔진은 기존 제조사들에게 오히려 선택지 확장의 무기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내연기관 제조사들은 모터 제조 기술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신흥 전기차 제조사들이 엔진을 개발하고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이 압도적인 전기차 기술을 갖고 승부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세그먼트에 내연기관이 돌아온다면 그만큼이 그대로 격차가 된다. 어쩌면 소비자의 요구를 내세운 기존 자동차 공룡들의 내연기관 연구는 격차 회복을 위한 카드일 수도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의 전동화 지향은 변하지 않아
전기차 브랜드, ‘영업’을 할 때
그렇다고 큰 틀에서 전동화 전환이라는 방향성이 180° 전환되기는 어렵다. 수송에너지에 사용되는 화석연료의 배기가스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지금 전 지구적인 이상 기상현상은, 학자들도 입을 모아 산업화 시대 인간의 활동 이후 극적으로 증가한 이산화탄소 때문임을 언급한다.
다만 기존 내연기관차 제조사들에게, 엔진은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카드다. 신흥 전기차 제조사 특히 중국의 배터리+차량 결합체 기업들의 추격을 조금 늦추는 동안 게임의 양상을 바꿀 만한 전동화 라인업의 개발에 힘을 기울이려는 것이 주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글로벌 전기차, 2차전지 리서치 기업인 SNE에 따르면 동급 세그먼트에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완전히 같아지는 시점은 2030년 경 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이것도 전기차 입장에서 낙관적인 해석이지 그보다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기존 내연기관 공룡들은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전기차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강력한 성장 이전에 반드시 고꾸라지는 지점이 있다는 ‘J 커브’를 감안하면 전기차는 지금 그 낮은 지점을 향하거나 혹은 통과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기차 브랜드에게, 지금은 ‘파는 힘’ 즉 영업으로 승부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전기차 인프라 확충이나 충전 경험의 변화 등은 각 시장 권역의 기반이 되는 국가, 지역별 법령이나 사회 인프라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보다는 어찌 됐든 소비자가 최종 구매 단게나 사용 단계에서 받아들이는 비용을 동급 내연기관 차량과 크지 않게 하는 영업의 전략이 필요하다. 강력한 가속력과 신기한 기능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이 소비자의 일상에서 자부심으로 계속 자각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가격 면에서 ‘잘 샀다’는 뿌듯함이 오래 가는 법이다.
다만 싼 모델을 만들어 싸게 파는 전략은 권역이나 국가에 따라 먹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트로엥의 e C3는 2만 3,000유로(한화 약 3,300만 원대)로, 거의 한 세그먼트 아래급의 가격을 매겨 유럽에서의 세일즈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한국이라면 먹히기 어렵다. 볼보의 EX30가 국내 사전계약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합리적인 가격도 있지만 생각보다 작지 않은 사이즈(휠베이스 기준 2,650㎜), 부족하지 않은 편의 사양과 볼보라는 자동차의 브랜드 가치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라는 시장의 조건은 참 가혹하긴 하다.
다만 앞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가격 격차가 해소되는 시점이 도래한다면 이는 분명 전기차의 성장 그래프가 J커브의 가장 낮은 곳을 통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를 잘 지난다면 모빌리티의 동력원은 확실히 전기 중심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다만 이 때, 내연기관의 힘을 빌어 시간을 번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이 그 지위를 가져갈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파는 힘’으로 위기를 넘길 전기차 파이오니어가 될지는 예측이 엇갈리고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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