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주 사적인 차 1]
다시 간절한 하이브리드 생각
‘또 주유해야 하나.’ 계기반 연료게이지가 절반으로 내려왔다. 현재 운행중인 G4 렉스턴 전기형은 한 주에 20리터 정도의 경유를 먹는다. 연비는 8.8km/L. 경유 가격이 내려가서 그나마 다행이다. 주로 촬영 장비 등 무거운 짐을 싣는 차인데다 변속기도 6단이라 연료 소모량이 많은 편이다.
G4 렉스턴은 전기형이다 보니 ADAS(능동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가 없다. 오토 홀드 기능도 들어가 있지 않다. 조향 성능이 우수하고, 바디 온 프레임 타입 섀시인 점을 감안하면 승차감도 좋은 편이지만 장거리 주행 시에는 컨디션이 조금 나쁘다. 그래서 빌려 쓰는 차량이 가족 차량인 E 클래스 카브리올레다. E450, 즉 3.0리터 V6인 M276 엔진인데 ECU 맵핑을 통해 출력이 450ps대로 올라가 있어 옥탄가가 높은 휘발유 즉 고급휘발유를 넣어야 한다. 이 차의 연비도 잘 나와봐야 9km 대다. 자주 타진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
그러나 보니 최근 팔게 된 하이브리드 차량 생각이 난다. 렉서스의 NX300h였다. 공차중량이 2톤이 넘고 니켈 메탈 배터리를 써서 최신 하이브리드 차종들과는 달리 제원상 연비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5만km 이상을 타는 동안 실연비는 16km/L(공인 복합연비 12km/L)를 상회했다. 무엇보다 공영주차장 반값 할인이 매력적이었다. 3박 4일 정도 해외 출장 시 인천공항에 주차해두면, 연료비를 포함해도 왕복 콜밴 비용보다 쌌다. 물론 차량 한 대를 정리함으로써 가계 운영 경비 면에서는 절약이 되곤 있지만, 지금 보유한 두 차량으로 운신의 폭을 넓히기란 쉽지 않다.
전기차, 아직은 너무 비싸
지인이나 자동차 매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전기차 대세론자와 관망론자가 있다. 전동화의 ‘전’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페트롤헤드(petrolhead, 내연기관차 마니아)들은 일단 논외로. 전기차 마니아들은 높은 확률로 일론 머스크의 광팬이다. 그들의 일론 머스크 추종은, 2010년대 초반, 아이폰이 막 영역을 넓혀 갈 때의 스티브 잡스 숭배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는 그들에게 수드라 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테슬라가 모빌리티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통해 인류의 지평을 넓힌 건 맞다. 스타링크를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이 주권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 것은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그 전기차 대세론자들 중 실제 전기차 오너들은 몇 명이나 될까? 지난 1월, 전기차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cleantechinca.com)’의 자료를 재인용한 연합뉴스의 자료를 보면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덴마크, 아일랜드, 핀란드가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량의 64%를 차지한다는 점이 나온다. 이들 중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나라가 스페인으로 약 3만 달러 수준.
자동차 산업계 전문가들은 전기차 구매라는 행위가, 가치 소비라기보다 프리미엄 소비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다. 냉정하게 아직 전기차가 갖는 충전의 불편, 내연 기관 대비 부족한 최고 속력이나 이질감 등을 프리미엄 브랜드의 힘으로 덮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1회 완충 시 주행거리 역시 배터리의 용량에 달려 있는데 이 역시 높은 가격의 요인이 된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영향력이 아니라면 고객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전기차의 특성을 극대화한 슈퍼카 지향 마케팅인데, 그 역시 프리미엄 가치 소구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탈 만한’ 전기차는 동급의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종 대비 비싸다. 이걸 깨려고 하는 게 폭스바겐과 포드, 토요타 그리고 현대차와 스텔란티스 등 기존 내연기관차 공룡들이다.
차가 2대라면 모르겠는데…그러고 보니 2대네?
솔직히 지금 현재 타고 있는 준 ‘개스 거즐러(Gas Guzzler)’들을 제외하고, 억지로 가용 예산을 끄집어내 탈 수 있는 전기차는 몇 대 되지 않는다. 기아의 니로 EV, 코나 일렉트릭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이들 차종은 대기가 너무 길다. 수입차로는 푸조의 e-208 정도인데 4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에, 도로에 붙은 듯한 시트가 주는 일체감은 이제 피로다. 코나와 니로는 효율 면에서는 괜찮지만 후미의 안정성이 너무 떨어져 악천후에는 몰기가 무섭다.
게다가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시승차로 전기차를 갖고 오게 되면 최소한 촬영 들어가기 전후 30분은 충전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멀고 이색적인 외곽 지역에서 촬영을 하려면 이 30분이 나비 효과를 일으킨다. 이도 소요 시간 30분의 차이는 로케이션 도착 시점 기준으로 최대 2시간씩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촬영을 다른 자영업 임무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물론 전기차를 사업용으로 쓰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내연기관차를 보조하는 역할일 것이다. 실제로 쓰려 하니 그렇게밖에는 도리가 없다.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 400km는 고속도로 주행을 기준으로 하면 90km/h 정속주행, 그것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이나 가을을 기준으로 한다.
사실 이런 계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차후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에너지 비용만 따지면 향후 전기차는 분명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사업자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는 혜택도 따른다. 게다가 어찌 됐든 가계에 내연기관차가 이미 들어와 있다. 급히 이동해야 하는데 충전을 해놓지 않는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내연기관차의 ‘점프’ 충전, 전기 렌터카 요금 할인 등
그럼에도 내가 확실히 전기차를 사겠다고 마음먹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몇 가지가 추가적으로 해결돼 주길 바란다.
우선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 다른 내연기관차의 엔진을 활용한 ‘점프’ 충전 기술이다. 하이브리드 기술을차량 바깥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공연에서 활용하는 발전차와 비슷한 원리. 사실 정부는 급속충전기를 공급하고 있다지만, 택시, 상용 전기차의 보급으로 생각보다 충전 시설의 부족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채 충전을 못 했다가 장거리 운행을 하게 된다면 갑작스런 전력 고갈에 맞닥뜨릴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점프’ 충전 차량은 필요하다.
또한 전기차는 아무리 특별한 차라도 내연기관과 같은 감성적 요소가 많지 않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동력 계통 부품이 차지하는 공간과 이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감성적인 요소와 기능적 요소를 조화시키는 디자인이 적용됐다. 이는 소비자가 처음 보고는 단박에 깨달을 수 없지만 차량을 운행하면서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가치가 돼 줬다. 하지만 전기차의 레이아웃은 거의 획일적이다. 특히 향후로 탑승 공간의 디자인 자유도를 높이기 위한 스케이트보드(skateboard) 타입 플랫폼의 차량이 나오면 오히려 감성적인 요소는 더욱 약화될 수 있다. 물론 실내에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넣어, 자동차의 실내를 전혀 다른 경험의 공간으로 만든다지만, 변별력이 없다. 테슬라가 됐건 소니-혼다 모빌리티의 어필라가 됐건 결국 하는 말들은 비슷하다.
이렇게 감성적인 면이 모자라는 재화라면 굳이 주택 다음으로 비싼 돈을 내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진다. 차라리 렌터카를 사용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사실 전기차는 렌터카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국내 렌터카 기업이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과 제휴를 맺고, 검색, 계약, 컨시어지, 충전, 주차, 반납 및 차량을 활용한 쇼핑 장소 방문이나 병원 진료 등까지 가능한 슈퍼앱(super application)이라도 개발한다면? 여기에 자율주행 기능이 더해져, 무인 컨시어지와, 주차가 어려운 목적지의 경우 인근 주차장에서 대기하게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굳이 전기차의 ‘소유’가 필요할까?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인도의 타타(TATA)가 개발 중인 슈퍼앱의 비즈니스 모델이 이것이다.
거대 기업들이 이런 슈퍼앱을 내고 가격 경쟁이 일어나 결국 전기차 렌터카의 가격이 내려간다면, 그 때는 역시 내가 전기차를 살 확률이 무척 높아질 수 있다. 즉 이러나저러나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적어야 살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
안타깝게도, 적어도 한동안은 전기차가 하이브리드 자동차 대비 일상의 종합적 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가 나와 같은 평범하고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발싸심을 마음 편하게 도와주려면 위에 든 기술적 희망사항들이 추가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나 같은 서민들에겐 하이브리드가 여전히 가장 유효한 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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