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S 의무 보급과 운전자 재교육의 필요성
한 국회의원이 고령 운전자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ADAS(첨단 운전자 보조장치) 장착 비용을 지원하는 법안을 2023년과 2024년 연속 발의했다. 드물게 보는 법안다운 법안이었으나 정치적 시의성이 없어서였을까? 고령운전자 관련 사고가 화제인 와중에도 표결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2년 연속 폐기됐다. 심지어 규제는 줄이고 지원을 늘린다는 정부와 여당의 기조와 더 잘 맞아보이는 법안이었는데도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떠오른 고령자의 운전 면허 반납이라는 이슈는 세대 갈등의 불씨만 키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령자의 면허 반납은,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 상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다. 초고령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위 연령은 만 45세. 1979년생이다. 2달 뒤 해가 바뀌고, 거기서 15년만 지나면 이들도 60대에 들어선다. 생산 가능 인구가 부족한 시점에서 여전히 사회 활동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자동차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령운전자의 안전운전을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금의 과제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고령운전자의 실질적인 위험 요인은?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의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ging)은 운전자가 고령화됨에 따라 처하는 위험 요소를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근육과 관절의 경직성 인간의 몸은 유한하다. 나이가 들수록 관절은 굳고 근육은 약해진다. 관절염은 고령자를 괴롭히는 가장 큰 질병 중 하나다. 젊을 때처럼 목을 쉽게 돌리기도 어려워진다. 스티어링 휠 조작도 젊을 때처럼 빠르게 할 수 없다.
시력저하 사람, 차량, 도로표지판이나 신호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북미에서는 60세가 넘으면 2년에 한 번은 안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기를 권한다.
청력약화 도로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상황에 관한 소리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젊은 시절 소음에 노출되는 직업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약물 효과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질병으로 복용하게 되는 다양한 약들 중에는 운전 시 유의를 요하는 것들이 있다. 졸음이나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약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약물을 복용하고 운전하는 것은 북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도로교통법(제45조)로 규제 대상이다.
느린 반사신경과 유연성 부족 특별히 운동 신경이 뛰어나거나 부단히 이를 개발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통제 불능한 질환 파킨슨 병이나 뇌출혈 등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은 운전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자체를 어렵게 한다.
만능 아니지만 ADAS의 적용 효과가 분명한 이유
사실 위에서 열거한 노령 운전자의 위험 요소 중, 현재의 자동차 기술로 보완하지 못할 상황은 통제 불능한 질환을 갖고 있는 노령자의 경우밖에 없다. 특히 자율주행의 총 6단계 중 2단계에 머무른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조향 보조와 회피 등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한국이 ADAS에 대해 늦은 것 같지만 10년 전인 2014년, 신차 안전도 검사에서 벌써 전방충돌 경고, 긴급 제동 브레이크, 차선 이탈 경고가 들어갔다. 현재 충돌 저감 차원의 시스템까지 평가 대상에 넣는 것을 고려해 보험개발원 등이 연구 중이다.
북미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다른 연령대 운전자에 비해 고령자의 사고 위험군이 높게 나타나는 상황들이 정리돼 있다. 특히 교차로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도로교통안전국(NHSTA)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교차로에서 발생한 다중충돌 사고의 경우 16~59세 운전자 비중이 21%인 데 비해, 80세 이상은 39%에 달했다. 즉 다양한 상황에 대한 즉각적 지각과 복합적 판단이 필요할 때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신차나 페이스리프트 차량에 가장 중점적으로 추가되는 ADAS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교차로 충돌경고나 추돌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능들이다. 교차로에서의 사고 상당수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주행하다가 대향 차로 차량과 충돌하는 경우다. 이 때 차량을 회피하거나 충돌 시 강도를 약화해 피해를 저감하는 기술이 속속 보강되고 있는 것이다. 즉 고령운전자가 가장 취약한 상황에서의 예방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살펴보면 고령운전자의 취약해진 신체 기능을 보완할 만한 기술은 이미 현재 시점에서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의 경우는 가장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는 페달 오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기능까지 적용하는 등 혁신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의 페달 오조작 방지 기능
아직 ADAS는 상품성 항목?
그렇다면 ‘이 좋은 걸’ 왜 사용하지 않을까? 2024년 7월 시청역에서 돌진 사고를 일으켰던 제네시스 차량은, 당시 브랜드 분리 이전 현대차의 고급 라인업이었지만 ADAS 보급으로 보면 초기 단계의 차량이었다. 물론 제네시스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을 초창기부터 적용하긴 했지만 당시는 이 기능을 고급차를 위한 편의, 상품성의 기준으로 보던 시기였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에서 ADAS는 상품성을 가르는 항목이다. 혼다와 볼보처럼 몇몇 브랜드만 ADAS를 기본 적용하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 5의 경우 전방 충돌방지 보조(교차차량/추월시 대향차/측방 접근차, 회피 조향 보조 기능 포함)가 적용된 스마트센스를 전 트림에서 선택 사양으로 운영해 트림 간 차별을 없앴다고 하지만 이는 반대로 전 트림에서 이를 선택하지 않을 상황도 열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상위 트림에서만 해당 사양이 장착되는 데 따른 소비자 불만에 대한 대응 전략이지만 안전이 소비자 선택에 대한 책임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
수입차들의 경우는 과거 ‘깡통 트림’을 삭제하면서 표면상 전 트림이 ADAS 기능을 기본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가격 상향에 대한 저항을 무마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 기능이 적용된 차들은 바로 전 세대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일부 제조사의 경우는 ADAS와 함께 상위 옵션을 ‘끼워팔기’로 제공해 차량 전체의 가격 상승을 유도한다.
자영업자 37% 60대 이상
자동차 필요성 절실한 연령대
한국은 일하는 노인들의 비중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준 1위다. 그럼에도 소득이 안정적이거나 높다고 할 수 없다.
소득이 부족한데 차를 탈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노인들의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영역이 자영업이다. 통계청에 다르면 농어민을 제외하고도 자영업자의 37%가 60세 이상 고령자다. 자영업자들의 시계는 대중교통의 시계에 맞춰 살아가는 직장 근로자와 다르다.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 시, 어느 정도 보행까지를 전제해야 하는 대중교통은 생산성과 개인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도보 15분 내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고령자들에게는 자동차가 필수다. 그리고 그 자동차는 안전해야 한다.
물론 한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도 60대 이상의 실버 세대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구매력이 높은 부유층 노인들을 위한 고급차 수요자를 위한 세일즈 모델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차종에는 당연히 ADAS가 포함돼 있다. 상대적으로, 자영업을 이어가는 고령자들이 주로 구입해야 하는 차들은 상품성의 논리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업 용도의 차량이 반드시 소형 상용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상공인들의 플랫폼 같은 차로 인기가 높은 기아 레이는, 최신의 전동화 모델인 레이 EV에서 드라이브 와이즈 II를 선택해도 어댑티브 타입의 크루즈 컨트롤이나 교차로에서의 충돌 보조 기능이 없다. 현대 캐스퍼에서는 선택사양으로라도 존재하지만 실제 자영업에서의 활용도 면에서 캐스퍼는 레이를 따라갈 수 없는 모델이다.
충분히 적용 가능한데 왜 관심조차 없나?
사실, 앞서 해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고령 운전자들의 차량에 ADAS 장착 지원을 도와주는 것 자체가, 산업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할 국책 사업 모델로서는 조금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다음에 발의를 하게 된다면 노후경유차 조기 폐차와 대차 지원 모델을 참고한다면 좀 더 ‘상품성’ 있는 법안이 될 만하다.
즉 65세 이상 고령자가 ADAS 미장착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동 세그먼트의 ADAS 장착 차량으로 교환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때 폐차했던 노후경유차와는 달리, 기존 차량을 중고로 매입해 차량이 필요하나 수입이나 자산이 부족한 젊은 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고차와 정비 분야에서 추가적인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노후경유차 조기폐차보다 나은 경제 선순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ADAS는 필연적으로 많은 반도체 물량을 필요로 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에 따르면, ADAS가 장착되지 않은 내연기관 차량의 경우 적용되는 반도체 가격이 대당 약 400달러 수준이라면, ADAS가 적용된 전기차의 경우 약 1,600달러 이상의 반도체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고령 운전면허 보유자 수는 420만 명을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 이후 타격이 우려되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공급 과잉 리스크를 일정 부분 내수로 해소할 수도 있는 잠재적 수요가 존재하는 셈이다.
68세의 ‘모리조’ 70대의 발터 뢰를이 전하는 이야기
운전면허를 반납이 미화되는 것은 일본의 경우다. 고령자의 활동 반경이 지역 사회 중심으로 국한되는 일본 사회의 특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이나, 첨단 문물과 경제 활동의 전선에 있고 싶어하는 한국 고령자들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생산 인력이 부족해지는 한국의 특성상, 건강한 고령자들이 활동 반경을 줄이고 집에 머무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ADAS 뿐만 아니라 재교육 역시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난 10월 27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에서는 1956년생으로 올해 68세인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54세의 정의선 회장을 옆에 태우고 드리프트 쇼런을 선보이기도 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모리조(Morizo)’라는 ‘부캐’로 모터스포츠에서도 활약할 정도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포르쉐의 마스터급 테스트 드라이버 발터 뢰를(Walter Rörhl) 역시 70대에 가까운 나이까지 고성능차 개발을 위한 주행에 참여했다.
물론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나 발터 뢰를은 자동차 업계에서나 모터스포츠에서 초인적 입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전에 또 한 명의 노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출중한 운전 실력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훈련 덕분이다.
북미의 자동차, 교통 관련 각 단체들은 고령 운전자가 예비 고령자라 할 수 있는 50대 운전자들을 대상으로도 운전에 관한 다양한 보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은퇴자 협회는 (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AARP)는 50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위한 ‘Smart Driver’ 과정을 운영한다. 이를 수료한 고령 운전자들은, 수료증을 보험 회사에 제출하면 보험료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보수 교육은 운전면허 취득 기준 완화 시기에 면허를 땄던 이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최근 운전자들의 조작 미숙 사고를 보면, 도저히 인지능력 저하가 의심될 수준이 아닌 60대 초반의 운전자가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고령화의 문제보다 기능 교육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오래 운전을 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인간의 늙음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기술로서 보완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기술에 법규와 행정을 입히면 사회적 안전이 된다. 한국 정도의 국가 역량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내년에는 고령운전자가 더 안전하게 운전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을 때 표결까지라도 가는 성과를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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