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터스포츠의 영 에이스, 노력형 천재의 글로벌 모터스포츠 도전
TCR 이탈리아 2년차를 맞이하게 되는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 박준의 선수와의 인터뷰를 옮겨 보았다. 본 인터뷰는 2편에 걸쳐 게재된다.
까불까불하길 바랐고, 기고만장하길 기대했다. 바람과 기대는 빗나갔다. 만 19세 레이싱 드라이버, 박준의. 국내 최고 명문 레이스팀 현대성우 쏠라이트인디고의 에이스이자 지난 해 TCR 이탈리아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보여 준 드라이버다.
TCR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선수. 한국에선 아직 드문 존재다. 레이싱 드라이버라는 직업 자체도 멋있어 보이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 대중적 친숙도가 낮다. 빛나지만 외로울 수도 있는 길로 삶의 방향이 일찍 정해져서일까? 데뷔전에서 펑펑 울던 소년을 놀리고 싶은 마음에 요청한 인터뷰였는데, 몸도 마음도 탄탄한 어른과 만나고 왔다.
TCR 이탈리아 2년차, 쏠라이트 인디고 박준의
“이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2021년 CJ 슈퍼레이스 2라운드. GT 1 클래스의 포디움에 당시 만 17세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3위로 포디움에 올랐다. F1(포뮬러원) 오라클레드불의 막스 페르스타펜(네덜란드)처럼 운전면허보다 프로페셔널 레이스에서의 포디움이 먼저였다. 박준의라는 이름은 이 때부터 레이스는 물론 자동차 매체 관계자들에게 각인됐다. 팬데믹 시기만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찍 주목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이 당시 박준의는 엘리트 드라이버의 시작인 카트 대회도 다른 선수들 대비 3, 4년 정도가 늦었다. 천재를 단어를 사용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자신이 재능형 드라이버, 타고난 레이서가 아닐까 하고.”
그럴 만도 했다. 이듬해 열린 현대 N 페스티벌에서 쟁쟁한 성인 선수들과 겨뤄 초대 종합 챔피언을 달성했다. 1라운드 당시 같은 팀이자 10살 많은 동료 박준성 선수 뒤에서 패싱 라이트를 거칠게 깜빡이던 모습, 포디움 3위가 만족스럽지 않아 대성통곡하던 모습은, 요즘 말로 ‘자강천’(자존심 강한 천재)의 면모였다. 사실 그 정도의 자기 확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모터스포츠다.
“2023년 열 여덟 살 박준의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걸 깨닫게 된 계기는 역시…”
2023 TCR 이탈리아에서의 무한 경쟁
모든 것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무젤로, 미사노, 이몰라. F1 등 정상급 카테고리 모터스포츠의 무대이자 페라리 등 고성능 브랜드의 신차들이 담금질하는 서킷. 이곳에서 펼쳐지는 TCR 이탈리아 국내와는 차원이 다른 무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서킷도, 경쟁해야 할 드라이버들도. 특히 드라이버들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18세이던 자신보다도 어린 선수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준의 선수와 함께 가장 어린 선수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선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매 경기마다 성장하기 위해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머신도 달랐다. 같은 현대 아반떼 N 베이스의 차량이지만 현대 N 컵 차량과 TCR은 다른 차원의 머신이었다.
“TCR 머신의 브레이킹 포인트가 훨씬 깊어요. N 컵카가 100미터라면 TCR은 50미터다. 선회를 위한 세팅 및 밸런스도 다르다. 그만큼 더 운영도 어렵다.”
시작부터 도전이었다. 2023년 4월 23일, TCR 이탈리아 1라운드 결선. 첫 랩에서 왼쪽 뒤를 치고 들어오는 차가 있었다. 2022년 N 컵 대회 중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벌어졌던 5라운드 사고와 똑같다시피 했다. 알고 보니 자신보다도 어리다는 그 선수였다. 결국 개막전 경기에서는 리타이어할 수밖에 없었다.
“놀랐고 짜증도 났다. 하지만 경기 중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나중에 선수가 찾아와서 사과도 했다. 결국 시즌 마무리가 좋았으니 액땜이었던 셈이다.”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의 관계자들도 당시를 잊을 수 없다. “정말 미사일 같았다. 피하긴 커녕 인지도 불가능했다. 그런 걸 ‘미사일’이라고 표현한다.”
데이터와 몸의 혼연일체
레이스를 준비하는 루틴
스포츠 선수는 ‘루틴(일정한 순서, 패턴의 습관)’이 중요하다. 이는 오랜 훈련의 성과를 자연스럽게 본능적 감각과 연결시키기 위한 동물적인 전략이다. 특히 1/1000초 단위로 싸우는 모터스포츠 선수들은 레이스가 있는 주인 레이스위크 루틴을 갖고 있다.
“2023년의 경우, 팀 캠프에 2, 3일 정도 와서 시뮬레이터 연습을 한다. 주행 감각을 위한 전략이다.”
인터뷰 중 시뮬레이터 연습의 시범을 보였다. 요즘은 게임으로도 즐기는 사람이 더러 있는 심레이싱. 실제로 선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서킷의 배경은 실제 TCR 이탈리아가 진행되는 서킷 중 하나였다. 2023 시즌의 적응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건 이런 트레이닝의 결과다. 또한 익숙했던 국내 서킷과 닮은 점이 많은 것도 그로서는 활용할 정보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1년 간 경험해보니 무젤로와 이몰라 서킷은 고속 코너링이 많은 인제스피디움과 닮은 점이 있어 좋았다. 내 장기는 선회구간인데 그만큼 짜릿함도 느껴지는 곳이다.”
이런 빠른 적응에는 비행시간도 허비하지 않은 또다른 루틴에 있다. 대략 8시간의 비행인데 그는 눈을 붙이지 않고 연습 당시의 데이터와 출저 서킷의 코스를 분석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했다. 그 분석의 결과를 트랙워크(코스를 직접 걸으며 확인하는 것) 시 발에 전해지는 감각과 일치시켜보면서 주행 전략을 짤 수 있는 것이다.
“더 특별한 게 있다면, 경기 당일에는 공복감을 유지하는 것 정도?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멘탈을 챙기기도 한다.”
레이스위크 일정은 꽉 짜여 있어 일정이 비는 날은 거의 드물다. 그래도 드물게 이탈리아 현지를 여행할 기회가 생겨 찾은 곳은 바로,
“에밀리아 로마냐의 페라리 박물관이었다. 이재우 감독님과 함께 갔다. 역사만 긴 게 아니라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이고, 거기서 영감도 얻었다.”
“아직 어린 나이고, 너무 ‘레이스’ ‘자동차’ 하지 않길 바라는데, 그 짧은 틈에도 자동차 박물관에 갔다. 레이스에 대한 열정,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보통을 넘어선다.” 선수의 부친과 비슷한 또래인 쏠라이트 인디고레이싱 장종화 책임매니저의 메시지다.
단단해진 몸, 더 단단해진 멘탈
"성장을 넘어 성과 내겠다"
인터뷰 중 레이싱 수트 촬영을 위해 박준의 선수는 옷을 갈아입었다. 남자끼린데 어떠랴 하며 선수의 맨살을 볼 기회가 있었다. 2022년 현대 N 컵 그리드워크에서 봤던 그 가냘픈 모습이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몸은 아니었지만 한눈에도 허벅지, 어깨 등이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TCR 차량의 브레이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다. 시즌을 치러내는 동안의 체력도 필요하다. 지난 해의 테마가 도전과 성장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데 포인트를 둔 자세다.
“시즌 전 주행 테스트에서는 빠르게 감각을 찾는 데 집중할 계획이며 그렇게 하고 있다. 감독님, 엔지니어님과 상의 하에 코스 공략법과 차의 셋업도 여러 가지로 시도해본다. 결국 이를 통해 내가 가잘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경기에 참가했던 다른 선수들의 경우, 차종과 셋업이 바뀌면서 퍼포먼스가 달라지는 것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봤다. “혼다 시빅 타입 R TCR의 경우가 흥미로웠다. 원래 그 이전 세대 차량을 타던 선수가 10~15위권이었는데, 차량을 교체한 후 예선을 1위로 마무리하는 걸 봤다.” 이 메시지는 스포츠를 넘어 자동차 개발의 장이기도 한 모터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관찰이기도 하다.
이러한 준비에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올해는 포디움을 목표로 한다. 2024년에는 25세 이하 선수 중 3위를 기록하며 U25 트로피를 받기도 했지만 그에 만족할 수 없다. 레이스에서 바라보는 목표는 더 멀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TCR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이 돼야 한다. 그 다음 목표는 원메이크 레이스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포르쉐 카레라컵 출전이다. 최종적으로는 DTM(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의 챔피언. 이건 인생 목표다.”
원래 입단 당시의 그는 ‘레이스에 인생 올인’을 모토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그에겐 큰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성년의 초반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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