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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명륜 기자

크고 부드러운 플래그십 SUV, 혼다 파일럿

전방위 업그레이드, 프로모션에 따라 국산차와도 경쟁 가능해

 

혼다 파일럿의 4세대 모델인 ‘올 뉴 파일럿’은 시승기를 쓰기 어렵게 만드는 차였다. 운전자가 점점 차의 존재감을 잊게 된다. 순간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운전자에게 들이미는 차들과 달리, 부드러운 엔진 소리는 가능 한 먼 곳으로 즐겁게 달려보라고 속삭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의 실제적 주행감을 느끼는 데 집중해보았다. 


Honda Pilot
혼다의 플래그십 SUV 4세대 파일럿

 

정교한 업그레이드 V6 3.5리터 엔진

편의성 더한 10단 자동변속기


파워트레인은 너무 나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오딧세이처럼 10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됐다. 9단 변속기도 충분히 부드러웠지만 경량화된 패키징과 빠른 반응을 자랑하는 혼다 10단 변속기는 연비 개선도 구현 가능하다. 전체 기어비는 오딧세이와 동일하나, 오프로더로서의 역량도 갖고 있는 SUV인만큼 파일럿의 종감속 기어비가 약간 더 크다(4.167, 오딧세이 3.5). 국내에는 최상위 트림 4륜 구동 엘리트만 들어왔는데, 토잉 가능 하중은 최대 2,267kg에 달한다. 


시동 시 구동음에는 약간 더 박력이 더해졌으나 역시 고르고 부드럽다. 시동이 걸리고 잠시 후에는 곧 시동 전으로 돌아간 듯 조용해졌다. 변속기와 더불어 가속 페달을 밟을 때의 차량 반응이 이전 세대 비해 세밀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차 중량이 2,130kg로, 이전 대비 160kg이상 무거워졌지만 반응이 둔하다는 느낌도 없다. 36.2kg의 최대 토크 수치는 동일하고 대신 전개 범위가 5,000rpm까지 확대됐는데, 수치로 보이지 않는 저속 구간에서의 토크 조절이 더욱 부드럽고 세밀해졌다.


Honda Pilot Engine
디테일한 업그레이드, V6 3.5리터 엔진

기존 대비 300rpm 확대된 최대 토크는 스포츠모드에서 십분 느낄 수 있다. 자잘하게 나뉘어 있지만 다음 변속단에 가서도 충분히 최대 토크를 활용할 수 있는 회전수의 여유가 있어 지속적인 가속이 가능하다. 최고 출력 수치와 범위가 소폭 상향됐지만 그 끝을 보겠다고 애써 가속 페달을 바닥에 비비지 않아도 충분히 이 방법으로도 다이내믹한 가속감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비단결처럼 고운 구동음과 부드러운 주행 감각이 일품이다. 


파일럿의 이러한 엔진이 주는 감각은 디테일한 변화 업그레이드의 결과다. 엔진 캠 부분의 베어링 부분을 재설계해 단면 높이를 낮췄고 피스톤의 회전 질량도 줄였다. 전체적인 실린더는 저압 주조 알루미늄으로, 혼합기 비율 최적화와 연소 효율 극대화를 구현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3세대 파일럿의 오너이거나, 운행해본 이력이 있다면 경험해보길 권한다. 



길어진 휠베이스에도 착 감기는 조향감

대형 SUV 라이드 앤 핸들링을 재정의하다


5세대 파일럿의 휠베이스는 전 세대 대비 70㎜ 길어진 2,890㎜다. 더 커졌지만 오히려 도심 주행에서 U턴이나 좌우회전이 깔끔하고 편했다. 실제로 회전 직경이 12.4미터로 기존 대비 50cm 짧아졌다. 완만한 반지름값이 작고 급격한 커브이건 가리지 않고 착착 감는 대로 도니 손맛이 좋다. 높은 지상고를 감안하면 하중 이동도 적다. 



여기에는 세부적 기술 요건들이 개선된 4륜 구동 시스템인 i-VTM4 덕분이다. 기계적으로나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모두 섬세한 조절이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됐다. 후륜 디퍼렌셜 기어가 견딜 수 있는 토크의 범위가 확대됐을 뿐만 아니라, 응답 속도로 30% 빨라졌다. 디퍼렌셜 패키지도 경량화됐다. 이를 통해 노면 상황에 따른 최적의 토크 벡터링을 더 짧은 시간에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물론 그 전에 섀시 엔지니어링이 먼저다. 전륜 쪽의 경우 전 세대의 플로팅 타입 서브프레임(차대와 서스펜션을 연결하는 구조) 대신 조향 조작의 인풋을 직접적으로 바퀴에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실제로도 다소 심심할 정도로 가벼웠던 느낌의 기존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보다 약간 무게감이 ㄷ해졌다. 후륜 멀티 링크 서스펜션은 스프링과 쇼크 업소버를 분리하는 한편 휠과 연결되는 너클 부분을 알루미늄으로 교체했다. 이는 현가장치의 상부 구조 무게를 줄여 불필요한 관성력의 영향을 덜 받게 해준다. 


Honda Pilot Ride and Handling
파일럿 전후륜 서스펜션 및 조향 시스템

또한 최근 1~2년 사이 풀체인지를 거친 혼다 차종의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섀시는 현가 장치 및 서브프레임 부품에서 마찰의 저감과 부싱 확대를 공통적으로 적용했다. 파일럿의 ACE 바디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혼다 차종들은 동급 차종 대비 구동 소음이나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있는 편인데, 최근 풀체인지를 거친 차종은 그 부분이 상당히 개선됐고 파일럿은 그 정점에 있다. 오히려 최근에 탄 어코드 하이브리드보다도 우수한 정숙성을 자랑한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ctive Noise Cancellation)이 적용됐는데 그 이전에 섀시와 패키징 자체로 구현된 노이즈와 진동 제어가 압도적이다. 


Honda Pilot
더욱 업그레이드된 조향 감각


푸근한 아저씨에서 섹시한 유부남으로

달라진 혼다 파일럿의 외모


섀시 업그레이드는 주행감각뿐만 아니라 이 차의 디자인과도 관계 있다. 바로 트랙(윤거)의 확장이다. 4세대 파일럿의 트랙은 전륜 1,715㎜, 후륜 1,725㎜로 이전 세대 대비 각각 30㎜, 40㎜ 확장됐다. 타이어 단면폭도 확장된데다 후륜 트랙이 약간 더 넓어지면서 좀 더 ‘뒷심’이 느껴지는 모양새가 됐다. 휠베이스가 길어졌어도 회전반경이 짧은 것은 이 덕분도 있다. 여기에 시원시원한 직선이 더해져 한층 스포티하고 젊은 감각을 갖췄다. 


Honda Pilot
파일럿 후미 디자인

물론 3세대 파일럿도 디자인 면에서 혹평받는 차는 아니었으나, 전면에서 봤을 때 트랙이 좁아 캐빈 공간이 하체에 비해 뚱뚱해 보이는, 다소 ‘가분수’ 같은 비례감이 아쉬웠다. 국내 파일럿 오너들이 튜닝을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매력적인 드레스업 레퍼런스도 부재했다. 그런 한계점이 명확히 개선된 새로운 파일럿은, 듬직하고 푸근하지만 어쩐지 아버지 같던 차에서, 아직 총각 태를 벗지 않은 섹시한 이웃집 새신랑의 이미지로 거듭났다.



입맛따라 7/8인승 SUV 전환

재미까지 더한 공간활용성

 

3세대의 경우 파일럿은 7인승과 8인승이 나뉘었다. 국내 시판의 경우 전기형에서는 패밀리카 성향이 좀 더 강조된 8인승, 후기형에서는 2열 독립 시트를 채용해 좀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한 7인승이 주력 트림이었다. 


이번에 국내 시판 중인 5세대 파일럿은 엘리트 트림 단일로, 7, 8인승 구분이 없다. 대신 높은 지상고를 십분 활용해, 트렁크 바닥에 2열 시트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가운데 좌석 하단부의 끈을 당기고 시트 뒤쪽을 들어올리면, 바닥의 프레임에 물려 있는 시트 하단부의 걸쇠가 있다. 


Honda Pilot
2열 가운데 시트 수납

특별한 잠금 장치는 없으므로 그냥 뽑아 올리면 되지만 무게가 가볍지 않다. 20kg 이상인데 바벨20kg과는 다르다. 특히 키가 어느 정도 큰 남성이라면 차 안에서 일어서기가 어려우므로 허리로 들게 될 텐데 운동이 부족하다면 다칠 수 있다. 또한 시트를 들어올리다가 놓치면 옆 좌석의 시트가 찢어지거나 실내 다른 부품의 손상이 있을 수 있다. 2인 1조 작업을 권하되 부득이 혼자라면, 시트를 프레임에서 분리만 하고, 폴딩된 3열 시트 쪽으로 미끄러뜨리듯 밀어 올리면 된다. 


Honda Pilot
2열 공간의 다양한 활용

트렁크 바닥의 덮개를 열면 시트 수납 공간이 있다. 이 공간 바닥에는 시트 하단의 걸쇠가 들어갈 홈이 있으니 맞춰서 넣으면 된다. 이 옵션 하나로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인테리어와 편의 면에서도 변화된 부분이 많다. 우선 1열 팔걸이 시트가 없어진 대신 사이드 볼스터가 두터워졌다. 2열 천장에 들어갔던 리어 엔터테인먼트가 빠졌으며 파노라마 선루프가 적용됐다. 세대교체를 거치며 CR-V에서는 빠졌던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파일럿에는 적용됐다. 화려한 그래픽은 아니지만 시인성이 우수하다. 


다만 9인치 안드로이드 디스플레이 오디오는 지나치게 대시보드면을 따르다 보니 운전자 기준 시인성이나 조작성이 다소 부족하다. 반대쪽이 멀게 느껴진다. 대시보드 전체의 수평적 아키텍처에 신경 쓴 것은 좋은데 이 디스플레이는 운전석 쪽으로 약간의 틸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는 전면부 카울이나 앵커 부품 쪽의 재설계가 필요할 수 있다. 그냥 참고 타는 수밖에 없을 듯. 


도어 내측 트림에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것은 좋다. 하지만 기껏 여기까지 해놓고, 이 자리에 앰비언트 라이트가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Honda Pilot
혼다 파일럿 도어 트림. 앰비언트 라이트라도 들어갔다면.

또한 오랜만에 브랜드가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적용됐음에도, 사운드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차가 크고 분리된 채널이 많으니 소리 소스 간 분리감은 좋은데, 중저역대 소리가 강해 멜로디 악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벙벙’ 거리는 느낌이 있다. 비트가 강한 클럽 음악은 괜찮은데 의외로 락/메틀의 기타 솔로는 약하게 들린다. 



정확한 속력 제어

화룡점정 혼다 센싱


이전 세대 파일럿은 국내 시판 라인업 중 혼다 센싱의 저속 추종(LSF) 즉 밀리는 구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 페달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기능이 부재한 유일한 차였다. 심지어 오딧세이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그 기능이 들어갔다. 


10단 변속기를 채용한 4세대 파일럿은 그 문제를 해결했다. 새로운 혼다 센싱의 트래픽 잼 어시스트(TJA)가 기존 저속 추종 기능의 업그레이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Honda Sensing
속력 제어 정교해진 혼다 센싱 ACC

새로운 세대의 어코드와 CR-V에서도 해결된 부분인 자동감응식 정속주행 장치(ACC)의 속력 제어도 그대로 적용됐다. 기존 혼다 센싱의 경우 ACC 작동 중에도 내리막길에서 계속 속력이 붙는다는 문제점이 있었으나 차세대 혼다 센싱은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 


화려한 그래픽은 아니지만 전방 차종의 종류에 따라 반응하는 그래픽도 재미있다. 어코드에도 적용된 부분이다. 혼다답게, 모터사이클도 당연히 모터사이클 모양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가끔 SUV가 소형 탑차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ACC 주행 중 감속 시 차 아이콘에 제동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아날로그 디자인의 계기반이지만 기능의 본질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양보가 없는 혼다답다. 


시승하면서 몸이 피곤하지 않고 기분 좋은 느낌이 계속 이어지는 차는 많지 않다. 파일럿이나 오딧세이는 장거리 주행에서의 피로감을 최대한 덜 느끼게 해주는 차였는데, 4세대 파일럿은 그런 평온함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1,000만 원 가까이 올라 6,900만 원대가 된 가격이 약간의 허들이 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 차량은 판매 물량으로 승부하기보다 입소문을 통해 탈 사람들이 타는 그런 차였다. 렉서스처 RX처럼 개인사업자 구매 시 혜택을 마련한다든가, 파일럿 오너만을 위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마케팅적 방법이 뒤따른다면 충분히 시장에 어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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