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같은 매력, 미쯔오카
최선을 다해 정교하고 깔끔해지기. 일본인들의 이런 지향성은 자동차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모든 일본 자동차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다가도 사고를 치면 크게 치는 일본의 특성 상, 정말 괴짜 같은 인물이 나오기도 존재한다. 일본의 10번째 창업 제조사이자, 가장 성공한 대중적 레트로카 브랜드, 미쯔오카를 잠시 살펴보며 현재 불고 있는 각 제조사들의 헤리티지 부각 바람, 그 의도의 허와 실을 간략히 엿본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그러나 비싸지 않다
1960년대, 일본의 10번째 브랜드로 창업한 미쯔오카 자동차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레트로 타입 코치빌더(외형 제작 공방) 브랜드다. 물론 자가토나 피닌파리나 정도의 위상은 아니지만 분명 장인의 손길이 닿은 차다.
그럼에도 비싸지 않다. 1950년대 롤스로이스 실버클라우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준중형 세단 가류(Galue)의 가격은 411만 엔, 한화로는 3,800만 원 수준이다. 마쯔다 MX-5 기반으로 1930년대 유럽 로드스터의 디자인을 닮은 히미코는 500만 엔으로 4,500만 원. 참고로 2010년대 중반에 이런 차들을 국내 한 수입사가 들여와 1억 원 넘는 가격을 책정했다. 애초에 대중에게 팔 것이 아니라 수집가들에게 팔 목적이었다고 한다.
미쯔오카의 창업주인 미쯔오카 스스무(1939~)도 그랬다. 원래 닛산의 자동차 정비공으로 시작해서 영업사원을 거쳤던 그는 1968년에 미쯔오카 자동차를 열었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시피 처음에는 중고차로 시작했다. 그러나 닛산의 섀시 및 파워트레인을 활용하되 껍데기로는 자신이 동경하던 1930년에서 1950년애 영미권 차량들의 디자인을 씌우는 아이디어를 발휘하며 레트로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쯔오카는 단순한 레트로카가 아니라, 과거 차의 디자인을 당시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뼈대가 되는 차들 자체는, 창업주 자신이 좋아했던 영미권의 차량들보다 작았다. 영감을 받은 차가 뭔지는 알 수 있지만 단순히 그걸 베낀 게 아니라 그 대상이 되는 차의 특징만 잘 살리고 차의 스케일에 맞게 디자인했다.
초창기의 미쯔오카는 커스텀 코치빌더처럼 움직였지만 이미 1990년대에 이르면 북미 법인을 포함해 연간 생산량이 9,000대에 이르는 중견 브랜드가 된다. 여기에는 스스무 창업주의 띠동갑 동생인 미쯔오카 아키오(1951~)의 공도 컸다. 지금은 그가 고령의 형을 대신해 실질적 수장으로서 미쯔오카를 이끌고 있다.
형이 재규어, 롤스로이스 등의 디자인을 재해석했다면 미쯔오카 아키오 대표는 아무래도 북미의 영향이 강하다. 섀시 개발을 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보니 신차의 주기가 매우 뜸한데, 2021년 실로 오랜만에 나온 신차 버디(Buddy)는 미쯔오카 아키오의 성향을 보여 주는 차다. 토요타 라브 4를 기반으로 한 이 차의 디자인은 1970년대분터 1980년대 말까지 오랜 기간 인기를 누린 쉐보레의 블레이저의 디자인 요소를 차용했다. 투박한 격자형 그릴, 긴 보닛, 직경 작은 휠과 심플한 후미 디자인 등 특징적인 요소를 멋들어지게 살렸다.
아키오의 '친미' 성향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자동차가 미쯔오카 창립 50주년 기념 차종인 락스타(Rockstar)다. 히미코처럼 마쯔다의 MX-5를 기반으로 하지만 훨씬 더 남성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다. 이 디자인의 원형 역시 1960년대 쉐보레 콜벳 C2, C3에 있다. 파워트레인은 마쯔다의 1.5리터 스카이액티브 가솔린 엔진과 6단 수동, 자동 변속기를 결합한 모델이지만 외형은 그야말로 마초 락 뮤지션의 느낌이 살아 있다. 실제로 미쯔오카 아키오는 어린 시절 미국 하드 락 음악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포니는 왜 미쯔오카처럼 나오지 않을까?
아이오닉5의 프로토타입 격인 컨셉트카가 있다. 바로 포니의 디자인 큐를 전기차 언어로 다듬은 2019년의 45 컨셉트카다. 그런데 2022년, 현대차는 조금 더 하드코어한 시도를 했다. 2023년 5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콘코르소 델레간차에서, 1974년에 컨셉트카로 선보였던 포니 쿠페를 거의 되살린 디자인으로 복각한 것. 심지어 1세대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다시 펜을 잡았다.
하지만 분명히, 아쉬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말 레트로카다운 레트로카를 구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는 의견이다. 외관을 실제 포니 그대로 두고 파워트레인만 현재의 것으로 바꾸는 시도를 한 번쯤 해볼 수 없느냐는 강경한 목소리들도 있다.
냉정하게, 현대차에 있어 포니는 브랜딩의 수단이다. 현대와 기아는 전기차 덕분에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고 실제로 판매량도 크게 증가했다. 정의선 회장은 ‘내연기관 시대에야 우리가 패스트팔로워에 만족했지만 이젠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을 정도다.
그렇게 급격히 성장하다 보니 역시 세계인에게 내세울 만한 헤리티지가 부족한 것이 사실. 하지만 현대가 원하는 헤리티지 이미지는 딱 ‘추억 보정’ 정도고, ‘우린 그 때 이런 계획이 다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지프가 1950년대의 자료 사진들을 공개하고 있는 건, 미국이 그 때도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니를 처음 만들던 시절의 한국은 지금의 한국이 아니었고, 현대 역시 지금의 현대차의 위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미디어 자료에서 양질의 헤리티지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급적이면 최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득이 된다는 판단이다.
또한 규모 면에서 현대차는 미쯔오카와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 이런 기업은 미래적인 가치를 꾸준히 제시해야 살아남는다. 정의선 회장이 포니 쿠페를 전동화 모델로 복각한 것은, 과거에 감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업성의 문제까지도 갈 기회가 없는 것이다.
미쯔오카에 우호적인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
사실 미쯔오카는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읾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가려운 점을 잘 긁어준다. 특히 튜닝과 애프터마켓 영역에서 닛산과의 애정이 깊다. 미쯔오카가 사용해 온 닛산의 주요 차대와 파워트레인은, 역으로 그 자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다. 그러다 보니 도쿄오토살롱을 위시한 일본의 굵직한 자동차 행사에서는 닛산의 차종을 기반으로 한 완전 개조형의 튜닝카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히미코도 일본 현지에서는 튜닝을 거쳐 드리프트 대회에 나올 정도다.
특히 소형차인 뷰트는 닛산 마치의 차대를 쓰다가 지금은 토요타의 컴팩트 해치백 야리스의 것을 기반으로 하는데, 토요타 측에서 차대를 직접 공급해준다. 2021년에 나온 버디도 마찬가지. 즉 미쯔오카는 그 자체로서의 상징성도 있지만 일본 자동차 제조사, 튜닝업계와 더불어 만드는 선순환 구조에서 중요한 한 점을 담당하고 있다.
미쯔오카가 더 매력적인 것은, 차대와 파워트레인을 공급해주는 일본 제조사들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덕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기름을 거의 바닥에 쏟을 정도로 달리는 골동품의 느낌이지만, 가벼운 차체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덕에 상당한 연비를 자랑하는 것이 미쯔오카 차종들이다.
결국 미쯔오카라는 브랜드는 단순히 레트로카라는 영역에서만 두고 보면 의외로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브랜드는 과거에 머무르는 브랜드가 아니라 일본 자동차 산업의 특수한 관계를 잘 활용해 자신들의 창의성을 상업성과도 연결시킨 사례다. 외형은 과거를 향하고 있을지 몰라도 이들의 시계는 남들과 같이 앞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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