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2라운드 폴투윈 달성, 엑스타레이싱 이찬준
가운데 왼쪽의 ‘남자아이’를 보자. 2002년생. 이 사진이 찍힌 것은 2018년이고 당시 만 16세니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액면가로는 잘 봐도 중2 정도였다. 레이싱모델 ‘이모’들 옆에서 아직 쑥스러운 티가 난다. 선수 본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이 때 얼굴과 큰 차이가 없다. 아마 30대 후반중반까지 앳된 얼굴이 남아 있던 황진우 선수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2018년 CJ 슈퍼레이스 당시 가운데 왼쪽이 이찬준 선수
이 아이는 5년 뒤, 슈퍼레이스 슈퍼 6000클래스 개막전 2라운드 우승의 주인공이 되는 이찬준 선수다. 슈퍼 6000 데뷔는 2년차로, 2022 시즌 이미 로아르 레이싱에서 슈퍼 6000 최연소 포디움의 기록을 새로 썼다. 또한 엑스타 레이싱은 전날 이창욱의 우승으로 이틀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이창욱은 2라운드에서 2위를 지키며 원-투 피니쉬를 노렸지만 아쉽게 리타이어했다.
차세대 엘리트 드라이버들의 등장
한국타이어 아트라스 BX가 이번 시즌 슈퍼레이스에 불참함으로써 흥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특히 젊은 스타급 드라이버 김종겸의 부재가 컸다. 스타성과 실력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사생활 리스크가 불거진 서주원이 출전하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2021년 챔피언 엑스타레이싱은 그런 우려를 완벽히 불식시켰다. 로아르 레이싱에서 이적한 신예 이찬준, 동갑내기 이창욱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은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엘리트 선수들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경기 운영을 통해 한국 모터스포츠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이창욱과 이찬준은 무한 경쟁보다 전략적인 팀워크를 통해 경기를 운영하는 정석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1라운드에서 40분 49초 101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고 포디움 제일 높은 곳에서 섰던 이창욱이 2라운드에서는 친구이자 동료인 이찬준의 후미를 마크하다 경기 후반부 차량 트러블로 리타이어했다.
이찬준은 주니어 시절 우승을 밥먹듯이 한 드라이버는 아니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기량이 급속도로 향상돼 프로 활약을 기대케 했다. 특히 2017~2018년에는 KARA 카트챔피언십 2연패를 달성하며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무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2021년 슈퍼 6000 클래스에 출전, 6전에서 정의철을 추월해 우승하며 이전까지 김동은이 갖고 있던 만 18세 349일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의 우승은 용인에서만 3회차다. 이날 이찬준의 우승 기록은 40분 59초 250. 인터뷰에서도 “생각해보니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용인과의 좋은 인연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레이스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데브리(debris, 파편) 밟고 전륜 한쪽 타이어 상태가 좋지 않아 버지(verge, 연석 너머 풀밭)에 몇 번 다녀와 기록을 까먹었다”는 그는 이창욱이 차량의 트러블을 겪어가면서 뒤를 막아 준 데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실제로 그는 경기 후 바로 이창욱에게 달려가기도 했다.
조금씩 확대되는 모터스포츠 저변
물론 관객도 많아져야겠지만 우수한 선수 특히 가급적이면 세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가 많아지는 것이 해당 스포츠가 발전하는 방향이다. 야구, 여자프로골프가 대표적이다. 재능 있는 자원들이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거치고, 그 프로그램이 세계 트렌드를 따르는 것일 때 해당 스포츠는 관객들에게 ‘볼 만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사실 레이스 드라이버들이 점점 체계화된 드라이빙을 구사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트렌드다. 매회 연습 당 수 테라바이트 단위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거기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한 주행 및 세팅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식을 모터스포츠에 입문시키는 부모들도 단순히 재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러한 시스템을 알고 체계적인 투자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극한의 경쟁인 포뮬러 원이야말로 데이터의 향연이다. 자금력이 좋은 주요 팀들은 일본 슈퍼 GT 등을 경험한 엔지니어들을 초빙하여 데이터 분석과 전략 수립을 맡기기도 한다.
특히 2010년대 이후 AMG와 M, 포르쉐를 중심으로 고성능 브랜드의 고객군이 확장되면서 모터스포츠를 질적으로 이해하는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국산 브랜드로는 현대가 N 브랜드를 통해 고성능의 대중화를 이끌면서 마니아들이 형성됐고, 많은 아마추어들이 본격적으로 레이싱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중 상당수는 각 브랜드가 운영하는 레이싱 아카데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많은 레이스 드라이버들이 인스트럭터로 나서고 있다. 즉 외적으로 보이는 관객의 수 이상으로 보다 체계화된 교육을 받은 레이서들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최신 레이싱 테크닉을 기반으로 차원이 다른 질주를 보여 주는 젊은 드라이버들의 등장은 모터스포츠 뿐만 아니라 자동차 문화 전반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CJ 슈퍼레이스 취재를 진행했다. 2020년부터는 팬데믹으로 인해 모터스포츠 전문 매체나 기자들 중심으로 취재진 출입을 받고 있는데, 모터스포츠에 대한 수요, 모터스포츠 드라이버들을 좋아하는 진짜 고객들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미디어 접촉의 범위도 좀 더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최근 한국남자프로골프가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장타를 때리고 스코어를 낮출 수 있을지가 궁금한 열정적인 골퍼 갤러리들이 경기장을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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