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약속, HOF 헌액 이치로, 토요타 아키오 회장
- 한명륜 기자
- 1월 24일
- 4분 분량
MLB 명예의 전당 입성한 토요타 아키오 회장, 10년 전 그들의 대화
스즈키 이치로가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만장일치에서 단 한 표가 부족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예상대로이자 압도적인 결과였다.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 소식에 일찍, 가장 크게 축하를 표했던 이는 다름아닌 토요타의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다. 문득 두 사람의 대담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10년 전인 2015년의 일이다. 토요타의 본산이 있는 아이치현 출신 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는 아직 현역 선수였고 흰머리가 많지 않았다. 환갑 전의 토요타 아키오 회장도 젊었다.
2015년은 토요타나 이치로에게나 중요한 기점이었다. 토요타는 4세대 프리우스를 통해 TNGA 플랫폼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2015 도쿄모터쇼에서는 프리우스의 발표에 이치로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42세의 이치로 역시 당시 2,900안타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7월에 2,900안타를 기록한다.

기업 총수와 스타와의 대담 컨텐츠는 브랜드 차원에서 철저히 기획되고 관리된다. 정제된 메시지의 성찬이지만 자칫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되기 쉽다. 물론 이 대화 역시 토요타의 저력이나 아키오 회장의 철학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업을 대하는 진솔한 자세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볼 만하다. 대화는 크게 ‘성장의 의미(Meaning of Growth)’, ‘책임이라는 것은(Nature of Responsibility)’, ‘위기 상황의 직면(Facing Tough Situations Head-on)’, ‘변화(Changing Things Up)’, ‘자동차에 대한 사랑(Loving Your Car)’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진행됐다.
놀라운 것은 이치로나 토요타 아키오 회장 모두 그 당시 말하는 내용이, 지금 그들이 언론 등을 통해 발신하는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40대, 50대에 접어든 다음의 인터뷰이니, 30대 때 돌아보는 20대와는 차이가 있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까, 라고 생각하기엔 몇몇 키워드가 귀에 박힌다.

우선 ‘애차(愛車, aisha)’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키워드다. 개인적으로는 2023년 도쿄오토살롱 토요타 가주레이싱 부스에서 ‘애차’라는 말을 들으면서 뭔가 만화 속을 살고 싶어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애차라는 말은 스즈키 이치로의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이어서 나온다.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 차를 3년에 한 번 바꾸는 사람이 고객이 좋은가요, 아니면 한 차를 20년 타는 사람이 좋은가요?”
재미있는 질문이라는 듯 웃던 아키오 회장은 “둘 다 좋지요”라고 답한다. 자동차는 세대 교체가 있기 때문에 그 기술력을 따라 차를 바꾸는 고객은 당연히 감사할 일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애차’라는 키워드가 정확히 언급된다. 사실 이는 큰 관점 변화다.
일본 차 하면 떠올리는 내구성은 사실 브랜드의 가치에 있어 메리트만은 아니었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토요타 코롤라나 혼다 시빅 같은 차들은 생애 주기 중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할 때 사서 반의 반평생을 타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정작 소유주들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반영일수도 있다. 하지만 토요타 아키오는 거기에서 유대와 사랑의 가능성을 읽어냈다.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일상용의 차에도 운전의 재미를 더해 애착을 갖게 한다는 TNGA 플랫폼의 철학도 담겨 있는 것이다.

개그 욕심이 있는 아키오 회장의 화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촐싹’대는 느낌이 있다. 2024년 10월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정의선 회장과 함께 대담을 진행할 때의 모습보다 오히려 10년 전이 조금 더 무게감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현역 때여서일지도 모른다.
야구라는 판으로만 놓고 보면 이치로의 위상은 토요타 아키오 회장에 못지 않다. 하지만 그는 기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야구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달성했지만 그 달성의 순간마다 성취감이나 기쁨은 짧았다고 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장님을 보니 그렇게 잠깐 기뻐할 틈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밖에서 보자면 토요타는 순풍만범(順風滿帆, 돛에 순풍을 가득 받고 항해하는 모습, 만사형통)’으로 보이지만 여러 가지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계시니까요.”

“이치로라면 사람들이 당연히 4할을 기대하는 것처럼요?”라고 받은 아키오 회장은 자신이 회장이 되고 나서, 내가 심각해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훨씬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답한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이야기다. 사실 지금이야 토요타가 세계 1위를 순항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2015년 당시 토요타는 페달 문제와 타카타 에어백 결함 등 굵직한 품질 문젤 위기를 겪고 회복해나가는 단계였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10여년 세월의 한가운데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기쁩니다. 일부러 그래야지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자발적인 거예요.”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의 주책맞은 제스처나 쇼맨십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2024년 4월, 이치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이치현의 학교 운동장을 찾아 그와 캐치볼을 하고, 동네 배팅연습장에서 120km/h의 공을 치는 일과를 보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68세이긴 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모터스포츠를 즐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적에 필드 하키를 익혀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일정을 함께 한 차는 토요타의 센츄리 SUV.


이 내용은 토요타의 온드 매거진 <토요타 타임즈(Toyota Times)>에 실렸다. 2025년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가 예정돼 있었고 이치로의 입성은 수년 전부터 기정사실로 여겨졌기 때문에 계산된 행보였다. 아키오 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이치로를 위해 뭔가 특별한 것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혹, 이치로의 고향이자 토요타의 본산인 아이치현에 건설되고 있는 토요타의 스마트 실증 도시, 우븐 시티(Woven City)와 관련된 것일까?
덕아웃에 앉은 두 사람의 사진은 2015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아키오 회장이 밝힌 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겨울이었다. 아키오 회장은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늘었고 이치로는 흰머리가 많아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의 관점과 일상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사람이 연관된 일본의 업계, 야구와 모빌리티의 혁명은 이 견고한 일관성을 동력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Comments